아름다운사회

폭염에 열 받고 누진제에 열 받지 않게

폭염에 열 받고 누진제에 열 받지 않게

by 이규섭 시인 2016.08.19

맹위를 떨치던 폭염이 말복을 고비로 누그러질 기미다.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불판 더위’ ‘숨 막히는 더위’ 등 날씨 헤드라인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자글자글 끓는 한낮 뙤약볕에 외출했다가 어질어질 현기증을 처음 느꼈다. 천장 낮은 옥탑방에서 원고를 쓰다가 두통 현상도 일어났다. 나이 탓이려니 여겼다. 폭염에 지치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고, 온열질환자와 사망자가 증가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폭염의 맹위를 실감한다.
기상청은 서울에서 열대야가 가장 많았던 해는 36일 관측된 1994년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신문을 검색해보니 ‘찜통 서울 38.4도, 관측 사상 최고 폭염’이라는 제목과 함께 시민들이 한강 변에 나와 무더위를 피하는 사진을 곁들여 보도했다. 열사병 사망자가 서울에서만 1,000명 넘은 살인적 폭염이었다.
1994년 여름은 폭염이 일찍 한반도를 덮쳤다. 7월 8일 금요일, 푹푹 찌는 더위 속에 신문 1판을 마감하고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비상이 걸렸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신문사로 돌아와 ‘김일성 주석 사망’ 호외를 발행했다.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고 “전쟁이 나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며 시민들은 귀가를 서둘렀다. 그해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그 무렵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옥상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잤다. 어둠이 짙어지니 서울의 밤하늘에도 별빛이 빛난다. 어렸을 적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총총한 별빛은 아니라도 어둠 속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의 눈동자가 반갑다. 촛불을 켜고 책을 읽는 운치도 누렸다.
가뜩이나 더위에 지쳐 열 받는데 정부 당국자는 “4인 가구가 하루 3시간 30분만 에어컨을 틀면 전기요금이 8만원이라 부담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해 더 열 받게 만들었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외출은 자제하라면서 에어컨을 3시간 30분만 켜고 버틸 수 있는지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동네 부근 아파트 고층에 사는 지인은 이제까지 에어컨을 켜지 않고 여름을 났다고 한다. 평소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맞바람이 통하여 더위를 몰랐다. 올해는 창문을 열면 더운 바람이 들어오고 환자가 있어 왼 종일 켠다며 누진제 전기료 폭탄을 걱정한다.
국민들의 원성이 폭염만큼 뜨겁게 달아오르자 당정은 긴급회의를 열어 7∼9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한다는 땜질 처방을 내놓았다. 3개월간 가구당 전기료가 평균 2만1000원 줄어드는 생색용이다. 전기료 누진제는 고도성장 시절의 유물이다. 42년 전 가정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한 이유는 아낀 전기를 공장 돌리는 데 쓴다고 하여 불편을 감수했다. 그때는 에어컨 보급률이 3%에 불과했다. 시내버스는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고 다니던 시절이다. 폭염은 지구온난화로 해가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전기료 부담으로 한 여름 폭염에 열 받지 않도록 누진제의 합리적 개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