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내가 사랑하는 삶을 찾아서
진정 내가 사랑하는 삶을 찾아서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6.06.09
엊그제가 막내 외삼촌 기일이었다.
어머니하고 거의 20년 나이 차가 있으니 어머니에겐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들하고도 격의 없이 지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여러 해 전 예순이 조금 넘은 젊은 나이, 병을 얻어 여름이 막 기지개 켜던 이맘때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세상살이를 마치고 막 눈을 감은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외삼촌은 어떤 삶을 살다 간 것일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 즐겁게 한 세상을 살다 간 것일까.
무엇보다 당신이 원하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살다 간 것일까. 외삼촌만이 아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중국 청나라 장조의 ‘유몽영’과 주석수의 ‘유몽속영’을 묶어 우리말로 옮긴 ‘내가 사랑하는 삶’이란
소품집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수필집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때 그들이 했던 고민은 지금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타성에 젖고, 지적 편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을 따끔하게 일깨운다.
저자중 한 사람인 장조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치 있는 것은 가치 있다고 말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평가절하하는 것, 지나쳐버리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스러운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 속에 한 구절,
‘능히 세상 사람이 바쁘게 여기는 바를 등한히 하는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능히 세상 사람들이
등한히 하는 바에 바쁠 수가 있다’
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마음이 쿵당쿵당거린다.
디지털 지식정보사회라고 한다.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삶의 속도는 통제가 안 될 만큼 빨라졌다. 어떤 새것도 나오는 즉시 낡은 것이 되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 우리네 삶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뒤처진 양 조바심에 쩔쩔 맨다. 입만 열면 정보의 바다를 말하고 첨단정보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공허한 울림뿐이다. 삶에 여유를 주고 성찰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얄팍한 상술로 덧씌워진 값싼 정보만이 횡행하고 있다.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내가 사랑하는 삶은 어쩌면 우리가 등한시해 온 것, 아니 가까이 있으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내 삶으로 끌어올 때 온전히 살아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일까. 사랑, 화목, 평화, 기쁨, 그리고 행복 등이 그것이다. 이제 잘 보이려는 껍데기의 삶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혼의 메마른 밭에 깨끗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대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이제 다른 선택을 하면 좋겠다. 지금까지 의례껏 해 온 것, 그냥 끌려가는 삶, 타성에 젖은 평행선이 아니라 각을 1도쯤 틀어 언젠가 만나고야 마는 교차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우리가 꿈꾸고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할 거라 믿는다.
지금의 삶의 속도로 보면 참으로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는 것, 바로 그것을 해보면 어떨까. 진정 사랑하는 삶을 살아보자.
어머니하고 거의 20년 나이 차가 있으니 어머니에겐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들하고도 격의 없이 지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여러 해 전 예순이 조금 넘은 젊은 나이, 병을 얻어 여름이 막 기지개 켜던 이맘때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세상살이를 마치고 막 눈을 감은 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외삼촌은 어떤 삶을 살다 간 것일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니 즐겁게 한 세상을 살다 간 것일까.
무엇보다 당신이 원하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살다 간 것일까. 외삼촌만이 아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나의 삶을 돌아본다. 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중국 청나라 장조의 ‘유몽영’과 주석수의 ‘유몽속영’을 묶어 우리말로 옮긴 ‘내가 사랑하는 삶’이란
소품집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수필집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때 그들이 했던 고민은 지금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타성에 젖고, 지적 편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을 따끔하게 일깨운다.
저자중 한 사람인 장조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치 있는 것은 가치 있다고 말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평가절하하는 것, 지나쳐버리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스러운 것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 속에 한 구절,
‘능히 세상 사람이 바쁘게 여기는 바를 등한히 하는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능히 세상 사람들이
등한히 하는 바에 바쁠 수가 있다’
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마음이 쿵당쿵당거린다.
디지털 지식정보사회라고 한다.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삶의 속도는 통제가 안 될 만큼 빨라졌다. 어떤 새것도 나오는 즉시 낡은 것이 되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 우리네 삶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뒤처진 양 조바심에 쩔쩔 맨다. 입만 열면 정보의 바다를 말하고 첨단정보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공허한 울림뿐이다. 삶에 여유를 주고 성찰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얄팍한 상술로 덧씌워진 값싼 정보만이 횡행하고 있다.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 내가 사랑하는 삶은 어쩌면 우리가 등한시해 온 것, 아니 가까이 있으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내 삶으로 끌어올 때 온전히 살아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일까. 사랑, 화목, 평화, 기쁨, 그리고 행복 등이 그것이다. 이제 잘 보이려는 껍데기의 삶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영혼의 메마른 밭에 깨끗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대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이제 다른 선택을 하면 좋겠다. 지금까지 의례껏 해 온 것, 그냥 끌려가는 삶, 타성에 젖은 평행선이 아니라 각을 1도쯤 틀어 언젠가 만나고야 마는 교차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우리가 꿈꾸고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할 거라 믿는다.
지금의 삶의 속도로 보면 참으로 잠꼬대 같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는 것, 바로 그것을 해보면 어떨까. 진정 사랑하는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