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개망초

개망초

by 한희철 목사 2016.06.08

우리나라 꽃 중에는 서러운 이름을 가진 꽃들이 많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서러운 이름으로 댔던 꽃들은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등인데 찾아보면 그 외에도 적지가 않습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 며느리배꼽, 애기똥풀, 노루오줌, 잔털제비꽃, 바보여뀌, 벼룩나물, 골무꽃, 큰도둑놈의갈고리, 개불알꽃, 꿩의밥, 송장풀, 달뿌리풀, 괭이밥, 광대나물, 쇠별꽃…, 어찌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사연이 궁금해지는 꽃들이 제법입니다. 그런 이름 중의 하나가 개망초입니다. 그냥 망초도 아니고 개망초이니 말이지요.
개망초는 논둑이나 밭둑 혹은 빈집이나 묵는 땅에 쉽게 번져 전국 산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으로, 실은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귀화식물입니다. 주인이 게으른 탓에 쓸모없는 풀이 돋았다고 타박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개망초는 빈집 마당 허전하지 말라고 빈 밭 초라하지 말라고 찾아오는 이 없는 묵무덤 외롭지 말라고 논둑과 밭둑 무너지지 말라고 그렇게 열심히 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망초는 우리나라에 철도가 건설될 때 철도 침목을 미국에서 수입해 오면서 함께 묻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철도가 놓인 곳을 따라 흰색 꽃이 핀 것을 보고 일본이 조선을 망하게 하려고 이 꽃의 씨를 뿌렸다 하여 ‘망국초’라 불리기도 했고 ‘왜풀’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계란 프라이를 닮았다고 ‘계란꽃’으로 불리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돌잔화’, ‘개암풀’, ‘넓은잎잔꽃풀’, ‘풍년초’라 불리기도 하니 이름이 참 많은 셈입니다. 대부분의 이름이 촌스럽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름을 뭐라 부르든 개망초는 그래도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입니다.
무엇이든 흔한 것을 가치 없다 여기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지만, 자연의 이치로 보면 흔한 것은 그만큼 필요가 많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어린순은 좋은 나물이 되는데 뿐만 아니라 개망초는 약용으로도 쓰여 감기, 학질, 지혈, 림프선염, 간염, 위염, 장염, 해열, 해독, 설사, 전염성간염, 치은염, 절염, 혈뇨, 급성위장염, 말라리아 등에 광범위한 효험을 보이고 있습니다.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겠지요, 개망초는 ‘화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어색해진 이에게 개망초 한 다발을 전하며 그 뜻을 묻는 이에게 꽃말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습니다. 문태준 시인은 개망초를 두고 ‘공중에 뜬 꽃별/ 무슨 섬광이/ 이토록 작고 맑고 슬픈가’ 노래를 하기도 했으니, 꽃말과 함께 그의 시를 들려주면 흔한 꽃이라 하여 함부로 무시하지도 않을 듯싶고요.
개망초는 6월이 되면 온 나라 구석구석에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게 주어진 결과가 아닙니다. 누군가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있습니다. 개망초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흔하게 피는 개망초를 보며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진 거룩한 희생을 떠올리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