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추억처럼 살아나는 동요 두 편

추억처럼 살아나는 동요 두 편

by 권영상 작가 2016.06.07

나이 먹은 탓일까. 괜히 어린 시절, 셋이서 넷이서 모여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깊고 깊은 해저에서 뜻하지 않은 보물 한 점을 인양하듯 불현 머리를 스치며 떠오른다.
이웃 마을, 어촌에 정신이 좀 부실한 이가 있었다. 양곰이란 사내였다. 그때 그이의 나이 대략 마흔은 되었을까. 걸음걸이가 좀 별났다. 서너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선 다시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한겨울이면 그이는 밥을 얻으러 농촌인 우리 마을로 건너왔다. 밥값으로 버들개지를 꺾어오거나, 때로는 조개껍데기나, 파도에 씻긴 조약돌을 가지고 왔다.
그이는 밥을 얻으면 뒷마을 솔밭 머리 도래솔에 둘러싸인, 따스한 무덤 앞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식곤증 때문인지 무덤에 비스듬히 누워 잠을 잤고, 깨어나면 사타구니가 가려운지 벅벅 사타구니 밑을 긁었다.
곰아, 곰아, 양곰아. / 양지쪽에 앉아서/ 불알을 썩썩 긁어라.
그때, 여덟 살쯤 되는 우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그를 놀려댔다. 철이 없던 그때 시절, 그 노래는 왜 그리 재미있던지. 아마 노래 속에 어른을 상징하는 ‘부랄(불알)’이 들어있고,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으니 그게 또 신이 났던 것 같다.
또 하나 아련히 떠오르는 전래동요가 있다.
엄마야, 뒷집에 돼지 불알 삶더라./ 좀 주더나, 맛이 있더나./ 쿤내 쿤내(구린내) 나더라. ?
자식은 많고 좁은 방에서 부모와 함께 잠자던 옛날 아이들은 성에 대해서도 일찍 눈을 떴을 성싶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잠자리 기척을 모를 리 없었을 테다. 자식 중에서 머리가 굵은 어린 자식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 하필이면 엄마한테 고한다. 뒷집 아줌마는 돼지 불알 삶아서 좋겠더라고. 성에 눈을 뜬 어린 자식은 엄마 마음을 빤히 꿰뚫고 있다.
돼지 불알은 다 아는 그 옛날 남성들의 정력제다.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싱겁게 탐을 내보는 물건이다. 대체로 힘이 센 동물의 생식기를 요리해 먹으면 그 힘이 자신에게도 옮겨올 것이라는 주술성을 믿어보고 싶어서다.
나도 어릴 적엔 영문도 모르고 이 동요를 불렀다. 뒷집은 돼지고기 삶던데 우리는 고기 한번 먹어볼 수 없나 하는, 그런 막연한 마음에 불렀던 듯하다. 막냇자식으로 오냐 오냐 멋대로 자란 내가 이런 불경스런 노래를 안 불렀다면 거짓말이다.
좀 주더냐고 자식에게 물어보지만, 식구가 한둘이 아닌 그 집 안주인도 성큼 고기 한 점 잘라 줄 형편이 못 된다. 고기 삶는 냄새가 마을 골목을 풍기고, 배고픈 아이들은 구수한 냄새를 쫓아 그 집 담 너머 풍경을 들여다보지만 이래저래 배만 더 고프다.
“에잇! 구린내! 똥냄새!
아이들은 그렇게 손사래를 치며 먹고 싶은걸 참으며 견뎠다. 궁핍하게 살던 시절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궁핍을 그때는 노래로 풀어낼 수 있었다.
지금 내 앞에 그 옛날의 고향 풍경이 떠오른다. 뒷마을 도래솔 무덤에서 곰아, 곰아, 양곰아! 를 부르던 아이들, 마늘밭을 뒤지는 수탉을 향해 이유도 없이 흙덩이를 던지고, 토담집 양지쪽에서 딱지치기며 구슬치기, 비석 차기를 하며 코를 훌쩍거리던 아이들....... 그들 중에 나도 어렴풋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