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끓이며
차를 끓이며
by 김민정 박사 2016.06.04
시간이 고여 와서 잘박대며 잦아든다
둥글게 물이 들어 와글대는 저녁 창에
뉘인가 휘파람소리 빈 찻잔을 울린다
- 졸시, 「차를 끓이며」 전문
어느 사계절 차가 우리들 가까이 있지 않은 적이 있을까. 다정한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에 젖으며 마시는 한 잔의 차는 얼마나 훈훈하고 흐뭇하고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지!
더구나 그것이 우리들의 미각을 일시적으로 산뜻하게 해주는 차가 아니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는, 음미할수록 그윽하고 향기로운 차라면 운치는 한층 더 살아날 것이다.
눈 내린 어느 겨울날 우리가 찾아갔던 계룡산 남매탑사에서 마신 한 잔의 차 맛. 그곳은 절이라기보다 작은 암자였다. 스님도 두 분밖에 안 계셨다. 우리들의 모습이 퍽 추워 보였는지 따뜻한 아랫목에 자리를 권하고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주전자에 끓이셨다.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차 대접을 하시겠단다. 조그마한 화롯불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스님은 차 통에서 찻잎을 꺼내어 찻잔에 넣으셨다. 끓인 물을 그대로 찻잔에 붓는가 생각했더니 웬걸 60도 정도로 물을 식혀야 한단다. 그런 다음이라야 차가 잘 우러나고 차 맛도 제대로 난다는 것이다. 물을 부은 다음에도 뚜껑을 덮고 차의 맛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찻잎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차는 처음 마셔보는 설록차였다. 처음이라 차의 맛은 잘 몰랐지만 차 이름은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눈이 쌓인 겨울날 마시면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방문을 열어 놓고 차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는 하얀 눈이 산 가득 쌓여 있었다. 눈발은 어느새 그치고 뉘엿뉘엿한 석양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외롭고 고적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차,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 같은, 연인 같은 차일 것이다. 차를 알고,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 차에서 그윽하고 부드럽게 뒷여운이 남는, 한없이 은은한 그 맛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따뜻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과 욕심을 씻어 버리고 가슴 속을 훈훈하게 하여 끝없는 인간애를 갖게 하고, 또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한 잔의 차 속에서 우러나는 고요….
우리의 삶은 늘 고독하지만, 무엇인가 누군가 사랑할 수 있어 그 고독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문득문득 앙상한 나무들이 적나라한 제 모습을 드러내듯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그럴 때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명상에 잠겨 본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들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삶이 우울할 때는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싶다. 설록차든, 작설차든, 국화차든, 연향차든... 그러면서 잃어가는 주변에 대한 사랑과 옛 친구들에 대한 관심을 그윽한 차 향기와 함께 회복하고 싶다. 차를 우려내듯이 인생을 우려낸 그윽하고 아름다운 시조 작품도 쓰고 싶다. 내 절실한 마음이 닿는다면 그러한 시조도 내 곁에 와 앉으리라.
실선으로 뜨다가 / 점선으로 잠기다가 // 밀물이 되었다가 / 썰물이 되었다가// 저 혼자 / 잠드는 바다 / 수평선이 부시다 - 졸시, 「찻잔 속의 바다」 전문.
둥글게 물이 들어 와글대는 저녁 창에
뉘인가 휘파람소리 빈 찻잔을 울린다
- 졸시, 「차를 끓이며」 전문
어느 사계절 차가 우리들 가까이 있지 않은 적이 있을까. 다정한 친구를 만나 옛이야기에 젖으며 마시는 한 잔의 차는 얼마나 훈훈하고 흐뭇하고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지!
더구나 그것이 우리들의 미각을 일시적으로 산뜻하게 해주는 차가 아니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마실 수 있는, 음미할수록 그윽하고 향기로운 차라면 운치는 한층 더 살아날 것이다.
눈 내린 어느 겨울날 우리가 찾아갔던 계룡산 남매탑사에서 마신 한 잔의 차 맛. 그곳은 절이라기보다 작은 암자였다. 스님도 두 분밖에 안 계셨다. 우리들의 모습이 퍽 추워 보였는지 따뜻한 아랫목에 자리를 권하고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주전자에 끓이셨다.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차 대접을 하시겠단다. 조그마한 화롯불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스님은 차 통에서 찻잎을 꺼내어 찻잔에 넣으셨다. 끓인 물을 그대로 찻잔에 붓는가 생각했더니 웬걸 60도 정도로 물을 식혀야 한단다. 그런 다음이라야 차가 잘 우러나고 차 맛도 제대로 난다는 것이다. 물을 부은 다음에도 뚜껑을 덮고 차의 맛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며 찻잎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차는 처음 마셔보는 설록차였다. 처음이라 차의 맛은 잘 몰랐지만 차 이름은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눈이 쌓인 겨울날 마시면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방문을 열어 놓고 차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에는 하얀 눈이 산 가득 쌓여 있었다. 눈발은 어느새 그치고 뉘엿뉘엿한 석양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외롭고 고적할 때 마시는 한 잔의 차,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 같은, 연인 같은 차일 것이다. 차를 알고,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 차에서 그윽하고 부드럽게 뒷여운이 남는, 한없이 은은한 그 맛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따뜻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세상에 대한 모든 욕망과 욕심을 씻어 버리고 가슴 속을 훈훈하게 하여 끝없는 인간애를 갖게 하고, 또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한 잔의 차 속에서 우러나는 고요….
우리의 삶은 늘 고독하지만, 무엇인가 누군가 사랑할 수 있어 그 고독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나 문득문득 앙상한 나무들이 적나라한 제 모습을 드러내듯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그럴 때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명상에 잠겨 본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들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삶이 우울할 때는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싶다. 설록차든, 작설차든, 국화차든, 연향차든... 그러면서 잃어가는 주변에 대한 사랑과 옛 친구들에 대한 관심을 그윽한 차 향기와 함께 회복하고 싶다. 차를 우려내듯이 인생을 우려낸 그윽하고 아름다운 시조 작품도 쓰고 싶다. 내 절실한 마음이 닿는다면 그러한 시조도 내 곁에 와 앉으리라.
실선으로 뜨다가 / 점선으로 잠기다가 // 밀물이 되었다가 / 썰물이 되었다가// 저 혼자 / 잠드는 바다 / 수평선이 부시다 - 졸시, 「찻잔 속의 바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