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맛있는 인문학의 향연

맛있는 인문학의 향연

by 이규섭 시인 2016.06.03

그는 ‘방장’으로 통한다. 선비촌 사랑방 방장이 아니다. 떴다방, 키스방, 유리방 방장은 더더욱 아니다. ‘마르코 글방’을 운영하는 방장이다. 마르코 글방은 쪽지 광고로 얼룩진 인터넷신문이 아니다. 흔한 블로그나 카페도 아니다. 문우(文友)들의 글을 메일로 받아 편집한 뒤 640명쯤 되는 회원들에게 메일로 배달하는 인터넷 자유배달 공간의 방장이다.
언론인회에서 발행하는 회보에 ‘은퇴는 없다’는 새 기획시리즈를 시작했다. 퇴직 이후에도 글 쓰는 일과 연관된 일을 하는 회우들을 소개하는 지면이다. 두 번째 인물로 김승웅 방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신문쟁이 출신끼리 인터뷰를 한다는 게 서로 쑥스럽고 어색하다.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고 속내를 털어놓은 매개는 술이다. 반주를 곁들어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어갔다.
“기자생활 30여 년 동안 줄기차게 기사를 썼지만, 세상사와 남의 인생사뿐이다. 퇴직 후 자유의 몸이 되면서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 ‘모든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2008년 김영사)와 ‘파리의 새벽···그 화려한 떨림’(2009년 선출판사) 두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자신의 글을 쓰려고 문을 연 게 글방이다. 블로그나 카페를 활용하지 않고 메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댓글이 달리면 귀찮고 짜증이 나며 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방을 차린 지 12년째로 그동안 배달한 글은 8,700꼭지 쯤 된다니 엄청난 분량이다.
그는 마당발이다. 언론계는 물론 외무부 출입과 해외특파원을 지내면서 알게 된 외교계 인사들, 학계와 관계 등 글방에 글을 보내는 인사는 다채롭다. 다양한 경력의 경륜이 녹아든 격조 높은 글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왕성한 필력을 뽐내는 구순의 원로 언론인도 있다. 배우들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허리를 감싸 안은 사진과 함께 전해주는 할리우드 영화계 소식은 눈이 호사다. 해박한 해설을 곁들인 세계의 명곡(유튜브 명반)은 귀를 즐겁게 해준다. 가난한 시절의 아릿한 이야기,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추억의 자맥질 등 말랑말랑한 글들은 혀끝을 감친다.
고료를 받고 쓰는 의무적인 글이 아니기에 주제는 리버럴하고 내용은 웅숭깊다. 지혜와 감성을 나누는 인문학의 향연이 참 맛있다. 필자는 글을 기고하는 문우가 아니라 마르코 글방의 글을 받아 보는 독자다. 아침을 열고 메일을 확인하면 방장 이름의 글이 배달돼 있다. 공짜로 먹는 문사철(文思哲)의 맛은 상큼하다.
절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사도 바울을 ‘대기자’라 지칭한다. “바울은 페르시아어, 희랍어, 유대어에 능통한 언어학자이자 범 세계론자”로 평가한다. “예수가 바울을 언어가 전혀 다른 소아시아(터키)와 희랍을 거쳐 세계의 중심지 로마까지 가서 기독교를 전하도록 하명을 내린 것은 바울의 화려한 커리어를 알았기 때문이다.”고 풀이한다. 그는 기독교 깊숙이 숨겨져 있는 실용성(프라그마티즘)을 현장취재를 통해 입증하고 싶어 바울 전도지를 누볐다. 그의 기자정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평생의 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