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눈부신 서재

눈부신 서재

by 한희철 목사 2016.05.25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늘 책에 눈이 갑니다. 시간을 아껴 책방에 가면 한 바퀴 책방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행복해지고, 헌책방 어지러운 책들 사이에서 뜻밖의 책을 만나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뿌듯해집니다.
관심이 있는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떤 책을 읽는지를 유심히 살피게 되고, 그가 읽고 있는 책을 통해 그의 성격이나 관심을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슬며시 그가 읽고 있는 책이나 같은 저자의 책을 구해서 같이 읽기도 합니다. 언젠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주어질 때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싶은 바람을 품고 말이지요.
좋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은 언제라도 마음을 유쾌하게 합니다. 책을 소개해 달라는 것은 단지 재미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는 것만은 아닐 터, 묻는 사람의 생각이나 삶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오히려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테니까요. 어떤 책을 읽으면 당신처럼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어떤 저자의 책을 좋아하면 당신처럼 살 수가 있는 것이지요, 책을 소개해 달라는 마음속에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다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버릇은 어쩔 수가 없어 다른 누군가의 집을 찾아갔을 때도 그 집에 있는 책을 살피게 됩니다. 같이 간 사람들이 집의 평수를 살피고, 가구를 눈여겨보고, 가전제품의 사이즈나 모델명에 마음을 줄 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집에 있는 책에 마음이 갑니다. 누군가의 집에 있는 책만큼 그 집 주인의 관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도 드물다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찾아간 집이 아무리 넓고 화려하다 해도 집안 어디에도 서재나 책꽂이가 보이지 않으면, 책을 좋아하는 이의 눈에는 괜히 그 집이 허전하게 보일 것입니다. 반면 아무리 집이 좁고 허술하다 하여도 집 안 구석구석 좋은 책들이 쌓여 있으면 그 집 주인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주인이 하는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될 터이고요.
얼마 전 한 지인이 이사를 하여 인사 겸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이 사는 집은 가는 세월 따라 자신들을 비워내고 있는 두 분의 삶과 잘 어울리는 집이었습니다. 가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거실 탁자 주변에는 이런저런 책들이 고만고만한 키로 쌓여 있었습니다. 한 권 한 권의 제목과 저자에 눈길이 가는 책들이었습니다. 책의 모습이 조금은 어수선하게 보였지만 문득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서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분의 지난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던 만여 권의 책을 시골교회 도서관에 모두 기증을 했지요. 외진 시골에서 그 책 누가 읽겠느냐 물었을 땐, 30년 안에 한 아이가 여기 있는 책 중 한 권을 읽고 좋은 꿈을 갖는다면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이라 대답을 했고요. 나를 비워내고 다시 읽기 시작하는 책들이 새로운 싹 자라듯 쌓인 자그마한 거실, 내게는 충분히 눈부신 서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