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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사랑을 꿈꾸던 시절은 가고

영원과 사랑을 꿈꾸던 시절은 가고

by 이규섭 시인 2016.04.29

곰팡이 냄새가 폴폴 난다. 퀴퀴하지만 싫지 않다. 누렇게 바래 푸석푸석 부서질 것만 같다. 까맣게 잊다가 책장에서 찾은 헌책은 ‘永遠(영원)과 사랑의 對話(대화)’다. 저자인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97세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강연과 집필을 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다시 꺼내 보았다.
책의 사이즈도 작고 세로 편집이다. 국한문 혼용에 활자는 10포인트보다 작아 읽기가 불편하다. 초판은 1961년에 발간됐으나 가지고 있는 책은 1965년 중판(重版)으로 379페이지. 정가 250원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새로 편집한 2007년 판(A5)은 356페이지 가격은 15,000원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은 인생을 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좀체로 인생을 논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침묵을 지켜서도 안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인생을 논하려 들지 않는 시대에 김형석 교수의 철학이 담긴 에세이는 청소년 시절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책 제목처럼 영원과 사랑을 꿈꾸던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그의 글은 철학적 사유에 눈 뜨는 계기가 됐다. 그보다 앞서 출간된 ‘고독이라는 병’도 고독은 창조의 원천이라며 고독을 찬미한다. 어머니를 일찍 저 세상에 떠나보내고 외롭고 우울하던 시절, 고독은 숙명이라 여기기도 했다. 당시 안병욱 숭실대 교수의 저서와 함께 내 삶에 긴 여운 남긴 책들이다.
노 교수는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건강비결은 음식과 운동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로 빵과 우유 한 잔에 채소와 계란을 곁들여 먹는다. 치매에 도움이 된다는 의사 사위의 권유로 사과를 빠뜨리지 않고 먹는다. 운동은 쉰 살 넘어 정구를 시작했으나 짝이 있어야 할 수 있어 포기하고 수영을 30년 넘게 이어 왔다고 한다. 수영은 해외여행 때 호텔에서도 혼자 할 수 있다. 행복은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는 데,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가 꼬여 상처가 덧나는 경우가 있으니 수양이 모자란 탓이라 자탄할 수밖에.
서울이 빠르게 늙어간다고 한다. 2030년이면 10명 중 3명이 환갑을 넘겨 세계 주요 도시 중 8번째로 60세 이상 인구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14년 뒤 60세 이상 인구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는 일본 도쿄이며 1,32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100세 이상 인구는 1만6,000여 명 선이지만 일본은 3만 명 넘는다. 일본에서는 1963년부터 100세가 되면 총리가 은 술잔을 선물해왔다. 당시 100세 넘는 노인은 150여 명이었다. 100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은 술잔값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합금으로 대체할 것을 검토 중이라니 축복의 대상에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
장수노인들의 공통된 비결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꾸준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90대 노인들이 들로 산으로 쏘다니는 모습을 TV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허드렛일이라도 손놀림을 쉬지 않는다. 영원과 사랑을 꿈꾸던 시절은 가고 이제는 늙음과 건강을 신경 써야 하니 세월이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