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전철 경로 칸 지정을

전철 경로 칸 지정을

by 이규섭 시인 2016.04.15

지하철 에티켓은 언제쯤 제대로 지켜질까. 개통된 지 40여 년 지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차량 내부에 붙여놓은 ‘전철 이용 에티켓’ 포스터는 후진성을 홍보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다리를 너무 벌리면 옆 사람들이 불편해요.’, ‘임산부에게 먼저 양보와 배려를’, ‘전철 내 대화와 핸드폰 사용은 조용히’, ‘전철이 복잡할 땐 크기가 큰 팩은 손에 들어 주세요’ 조금만 신경 쓰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기본적 에티켓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한심하다.
지하철 민폐 1순위는 큰 소리로 전화 통화하면서 떠드는 사람이다. 얼마 전 온라인 매체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출퇴근길 지하철 가장 꼴불견’으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4%가 지적했다. ‘과도하게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19.6%), ‘김밥 등 냄새나는 음식 먹는 사람’(12.4%), ‘눈썹부터 립스틱까지 화장에 몰두하는 사람’(7.6%)이 뒤를 이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지공선사’들의 몰염치도 여전하다. 지공선사는 만 65세가 되면 학벌이나 경력, 재산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정부에서 주는 자격증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경로우대제도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경로석에 앉아 눈 지그시 감고 묵언 참선하면 경륜 높은 지공선사다. 나이가 벼슬도 아닌데 지공선사끼리 서열 다툼을 하거나 일반석 앞에 버티고 서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바라는 것도 낯 두꺼운 행위다.
지공선사가 됐지만, 지하철을 타면 어디에 서서 갈 것인가 고민된다. 경로석은 늘 만원이다. 일반석 젊은이 앞에 버티고 서있으면 “안 일어날 거야” 침묵 시위하는 것 같아 편치 못하다. 조는 척하거나 스마트 폰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얼마나 투덜거릴까. 일반석에 앉아 가는 것도 젊은이의 자리를 빼앗은 것 같아 불편하다. 출입문 옆에 기대어 창밖을 보는 게 편하다.
얼마 전 ‘카톡지기’로부터 받은 ‘지공선사가 지켜야 할 수칙 열다섯 가지’를 보고 공감했다. 지공선사는 출·퇴근 시 지하철 타지 마라. 젊은이 좌석에 앉지 마라. 정치 이야기 하지 마라.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 등 얼마든지 자킬 수 있는 교과서 같은 내용들이다. 늙으면 추해지고 냄새나고 꼰대 티가 나니 깨끗한 옷차림으로 단정하게 하라는 대목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지하철 한 칸은 긴 좌석이 6개로 7명씩 42명이 앉는다. 경로석은 3명씩 앉을 수 있는 좌석이 4곳이니 12명이다. 54명이 편안하게 앉아간다는 계산이다. 한 칸에 경로석이 12석이니 차량 10량이면 120석이 지공대사 자리다. 경로석 지정을 폐지하고 아예 두 칸을 경로 칸으로 지정하여 운영했으면 좋겠다.
1호 차(맨 앞 칸)와 10호 차(뒤 칸) 두 칸을 경로 칸으로 지정하면 108명이 앉아가는 혜택을 누린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지공대사들끼리 모이면 젊은이들 눈치 안 봐서 좋고 전화 받는 목청이 다소 높아도 이해의 폭이 넓을 것이다. 기존 경로석은 임산부와 장애인, 어린이 등 교통 약자 석으로 지정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