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즐거운 몰두

즐거운 몰두

by 한희철 목사 2016.04.13

봄에 피는 꽃이 유난히 눈부시게 여겨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겨우내 이어져 온 무채색에 가까운 세상 끝에 피는 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온통 잿빛 가까운 시간이 이어지다가 빨강, 노랑, 주홍, 흰색 등 물감을 뭉뚝뭉뚝 찍어낸 듯한 원색의 꽃들이 피어나니 눈이 부실만도 하지요.
겨울이라는 계절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봄에 피는 꽃은 모두가 추위를 이겨냈다는 점입니다. 모진 추위를 이겨낸 뒤에 피는 꽃이기에 봄꽃은 당연하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어찌 저 여린 것들이 겨울을 견뎌냈을까, 장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러나 봄꽃이 눈부시게 여겨지는 이유 중 뒤로 물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싶습니다. 봄꽃의 대부분은 꽃으로 먼저 피어납니다.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먼저 꽃으로만 피어납니다. 마치 오랫동안 예감하며 기다려온 봄의 기운을 더는 참을 수가 없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잎을 잊고 꽃으로만 피어나는 봄꽃은 즐거운 몰두를 생각하게 합니다.
무갈 황제 아크바가 숲으로 사냥을 나갔습니다. 저녁기도 시간이 되자 그는 늘 그랬듯이 말에서 내려와 땅에 자리를 펴고서 기도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 때문에 걱정이 된 한 시골 부인이 남편을 찾으면서 황제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남편 찾는 일에 몰두한 부인은 황제가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그만 황제한테 걸려 넘어졌다가 일어나서는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이 숲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아크바는 기도 중에 방해를 받아 화가 많이 났지만, 기도 중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규칙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났을 무렵에 조금 전의 그 부인이 자기 남편과 함께 즐겁게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황제와 수행원들이 거기 있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며 겁을 먹었습니다. 아크바는 부인을 보자마자 화를 내며 소리를 쳤습니다. “너의 그 무례한 행동을 해명하지 못하면 벌을 주리라.” 그러자 부인이 황제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폐하, 제가 그만 제 남편 생각에 몰두해서 폐하께서 여기 계신 것조차 알아 뵙지를 못했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폐하께 걸려 넘어졌을 때조차도 폐하를 못 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기도 중이셨고, 제 남편보다 한량없이 더 귀중하신 분에 몰두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폐하께서는 저를 알아보셨다는 것입니까?”
황제는 부끄러워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나중에 황제는 자기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학자도 스승도 아닌 한 시골부인이 자신에게 기도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노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꽃으로만 피어나는 봄꽃처럼, 남편 생각에만 빠졌던 부인처럼, 이 눈부신 계절 다른 것을 다 잊을 수 있는 즐거운 몰두에 빠져보면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