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나를 비워야 더 많은 것을 얻는다

나를 비워야 더 많은 것을 얻는다

by 정운 스님 2016.03.15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에 대학의 한 유명한 교수가 있었다. 교수는 학문에 매우 뛰어나다는 소문이 자자했으며, 어디를 가나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교수 본인도 스스로의 자만감에 빠져 있었다. 이 교수가 어느 마을에 난닌이라는 훌륭한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스님을 찾아갔다. 교수가 찾아가자, 스님께서 직접 차를 대접하겠다며 차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교수는 차방으로 들어가면서 순간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학문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스님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스님이 직접 차까지 대접해주는 것을 보니…….’
그런데 스님이 교수 앞에 있는 찻잔에 차를 따르는데, 찻잔에 찻물이 가득한데도 계속 차를 부어댔다. 교수는 순간적으로 외쳤다.
“스님 잔이 넘칩니다.”
그러자 스님이 태연하다는 듯 차관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 잔과 마찬가지로 그대는 나를 찾아와서도 자신의 견해와 이론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더이다. 그대 마음에 가득 찬 지견(知見)을 비우지 않는다면, 내 어찌 그대 마음의 잔에 차를 채울 수 있겠소?”
이런 일화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이야기다. 대학 학기가 시작되어 많은 학생들을 만난다. 특히 대학원 수업을 할 때는 가끔 학생들 중에 자신이 전공하고자 하는 학문이나 관심 분야가 아니면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있다. 불교학도 불교사 이래 다양한 학문이 발달되어 있어 견해가 크게 다르다. 학문 세계이니,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판을 통해서 공부가 느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배우는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가 강하면 본인에게 손해이다. 그러다 보니 학기 초가 되면, 늘 이런 말을 한다.
“무엇이든 공부를 할 때는 자신의 견해나 생각 그리고 자신의 지향하는 부분을 내려놓아라. 다양한 학문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넓히는 계기라고 생각하십시오.”
물론 어느 한 편으로 볼 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타인의 가르침이나 의견을 거르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주체성 없는 행동이 아니겠는가?’라고……. 그러나 학문이나 철학, 수행 문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이나 철학도 결국 좁은 세계요,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 작은 세계와 한 점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니 선생의 말이나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자! 생각을 전환하자. 자신의 견해를 내려놓고 타인의 말이나 학문을 배우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더 많은 것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예전에 히말라야 산맥 꼭대기에 있는 티벳 사원의 동자승들 에피소드를 담은 ‘The cup'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불교는 나로 가득 찬 마음을 비우고, 그 속에 남을 담으라는 자비의 가르침이다.”
꼭 불교가 아니어도 사람 사는 속에는 나를 비워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더불어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