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매화
바람과 매화
by 강판권 교수 2016.03.07
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봄바람은 무겁고 지친 사람들의 어깨를 일으켜 세우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봄바람을 한껏 기다린다. 바람 중에서도 꽃바람은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마저 헤집어 놓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머지않아 남쪽부터 꽃바람이 불어오면 저마다 마음에 둔 곳을 찾아 길을 나설 것이다. 나도 꽃바람에 못 이겨 어디론가 떠나지만,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바람은 ‘매화풍’이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24번의 꽃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다. 24번의 꽃바람 중에서도 가장 먼저 오는 꽃바람을 매화풍이라 불렀다.
요즘이야 흔하고 흔한 것이 매화지만, 그래도 아무리 매화가 흔해도 꽃의 자태만은 고고하고 아름답다. 나는 고향 앞마당과 집 근처 밭에 살고 있는 매화를 자주 만난다. 그런데 마당 앞의 매화와 밭의 매화는 개화 시기가 조금 다르다. 그 이유는 사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밭의 매화는 마당 앞의 매화보다 약간 일찍 개화한다. 그 이유는 밭의 매화는 언덕을 등지고 있어서 바람을 적게 받는 대신 햇볕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반면 마당 앞의 매화는 앞이 확 틔어 있어서 바람을 세게 받는다.
이처럼 사는 장소에 따라서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史記)>·<이사열전(李斯列傳)>에 따르면, 초나라에서 낮은 관직 생활을 하던 이사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같은 쥐면서도 곳간의 쥐와 화장실의 쥐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곧장 제나라에 가서 순자의 제자가 된 후 결국 진나라의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삶의 터전인 공간은 아주 중요하다. 매화의 삶도 어떤 공간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개화 시기만이 아니라 앞날도 다르다. 그러나 나무는 사람과 달리 주어진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창조한다.
봄바람이 불면 고속도로는 매화를 찾는 ‘탐매가’ 혹은 ‘심매가’의 차량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매화와 만나는 시간이 한층 행복할지도 모른다. 집 앞의 매화에 관심 갖지 않는 자가 먼 곳에 매화를 찾아간들 얼마나 큰 행복을 만끽할 것인가. 일상에서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자가 유명 관광지에서 어떻게 행복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나는 바람을 생각할 적마다 <장자> 속의 우화를 즐겨 떠올린다. 어느 날 지네가 외출하다가 뱀을 만났다. 지네는 뱀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수없이 많은 발을 갖고서도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데 뱀은 하나의 발도 없이 순식간에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뱀이 지네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지네야, 화내지 마라. 나도 화 날 때가 있단다.” 지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뱀은 한숨을 푹 쉬면서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인간은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른다. 게다가 바람은 순식간에 수천 리를 간다. 지네가 뱀을 부러워하고, 뱀이 바람을 부러워한다면, 지네와 뱀의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바람은 자신의 색깔로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이야 흔하고 흔한 것이 매화지만, 그래도 아무리 매화가 흔해도 꽃의 자태만은 고고하고 아름답다. 나는 고향 앞마당과 집 근처 밭에 살고 있는 매화를 자주 만난다. 그런데 마당 앞의 매화와 밭의 매화는 개화 시기가 조금 다르다. 그 이유는 사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밭의 매화는 마당 앞의 매화보다 약간 일찍 개화한다. 그 이유는 밭의 매화는 언덕을 등지고 있어서 바람을 적게 받는 대신 햇볕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반면 마당 앞의 매화는 앞이 확 틔어 있어서 바람을 세게 받는다.
이처럼 사는 장소에 따라서 삶은 조금씩 달라진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史記)>·<이사열전(李斯列傳)>에 따르면, 초나라에서 낮은 관직 생활을 하던 이사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같은 쥐면서도 곳간의 쥐와 화장실의 쥐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곧장 제나라에 가서 순자의 제자가 된 후 결국 진나라의 재상 자리까지 올랐다. 삶의 터전인 공간은 아주 중요하다. 매화의 삶도 어떤 공간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개화 시기만이 아니라 앞날도 다르다. 그러나 나무는 사람과 달리 주어진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창조한다.
봄바람이 불면 고속도로는 매화를 찾는 ‘탐매가’ 혹은 ‘심매가’의 차량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매화와 만나는 시간이 한층 행복할지도 모른다. 집 앞의 매화에 관심 갖지 않는 자가 먼 곳에 매화를 찾아간들 얼마나 큰 행복을 만끽할 것인가. 일상에서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자가 유명 관광지에서 어떻게 행복을 만들 수 있겠는가. 나는 바람을 생각할 적마다 <장자> 속의 우화를 즐겨 떠올린다. 어느 날 지네가 외출하다가 뱀을 만났다. 지네는 뱀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은 수없이 많은 발을 갖고서도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데 뱀은 하나의 발도 없이 순식간에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뱀이 지네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지네야, 화내지 마라. 나도 화 날 때가 있단다.” 지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뱀은 한숨을 푹 쉬면서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인간은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른다. 게다가 바람은 순식간에 수천 리를 간다. 지네가 뱀을 부러워하고, 뱀이 바람을 부러워한다면, 지네와 뱀의 삶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바람은 자신의 색깔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