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어둠 속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빛입니다

어둠 속 눈을 감지 않는 것이 빛입니다

by 한희철 목사 2016.03.02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과 감고 있는 것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는 아무리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어둠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어둠뿐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해도 눈을 뜨고 어둠을 바라보는 일은 눈을 감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어둠을 응시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음으로 어둠을 어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일이지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도 보는 이가 없다 생각하기에 어둠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어둠 속에서 눈을 감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깨어 어둠을 바라보는 이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마주합니다. 단번에 다 알 수는 없어도 어떤 징조가 있는지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은 이들은 알 수가 없었던, 어디에서 어떤 미세한 소리가 들리는지, 어디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오기 시작하는지를 압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36년은 우리 민족의 흑암기였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어둠의 시간이었지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길을 정할 수 없는 괴로운 시간이었고, 이름과 말을 빼앗겨 자칫 우리의 얼을 모두 빼앗길 수 있는 절망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눈을 아주 감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깨어 바라보았던 이들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잠들지 않기 위해, 잠든 이들을 깨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 깨어 빛을 찾았던 이들 중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 영원한 ‘누나’로 남아 있는 유관순 열사입니다. 그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나이는 불과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1902.12.16~1920.9.28, 그의 짧은 삶을 나타내는 숫자를 가만 헤아려보면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유관순 열사가 남긴 마지막 기도이자 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아무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걸어감으로 그는 어둠 속 빛이 되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는 첫걸음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