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by 김재은 대표 2016.02.18
봄비가 오락가락하는 주말 오전, 서울 둘레길에서 필자가 주도하는 35번째 행복한 발걸음 모임을 진행했다. 작은 인연, 새로운 인연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그냥 걷는다.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며 삶의 자유를 만끽한다.
하나의 회사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학교 동창들이거나 한마을 사람들도 아닌데 뭔가에 끌려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하지만 분명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뭔가가 있을 터.
하지만 세상을 들여다보면 과연 우리가 이어져 ‘연결’된 존재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눈앞에서 죽어가는데도 딴 세상일인 양 나 몰라라 한다. 아니 거기에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아냥거리거나 매도하기도 한다. 콩 한 쪽이라도 서로 나눠 먹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 미풍양속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위험한 지역에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만들어진 위로의 진실’에 매달리려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서 거리가 떨어진 이들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고, 거리가 가까운 이들은 ‘고통스러운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이를 ‘동심원 패러독스’라고 서경식 선생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려면 피해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피해의 진실에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노력하고, 가까운 이들일수록 용기를 내어 가혹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경주될 때 우리는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연결된 존재로 ‘곁에서’ 살아갈 때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 결국 함께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설 연휴 전날 지인으로부터 설빔처럼 ‘곁으로’라는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저자인 시인 김응교 님은 원심력을 따라 고통의 진앙지에서 도망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수 없다고 일갈한다. 그 아픔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곁으로’의 구심력이 있는 사회가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무정하다 해도 ‘곁으로’의 방향성을 가진 사람은 있는 법이다. 생색이나 내는 탐욕스런 군상들과는 달리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하는 마음은 잘 보이지 않고 가늘고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곁으로 여행 가는 것은 사랑의 총량을 키우는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자연의 곁으로 가까이 가서 앉을 때 우리는 자연이 되고, 고통받는 존재 곁으로 가면 위로와 응원이 될 것이니 어찌 사랑이며 행복이 커지지 않겠는가.
루쉰은 말했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된다. 누군가의 곁에서 연결된 존재로서의 공감의 교집합을 만들고, 작은 손을 꼭 잡고 뚜벅뚜벅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길, 따뜻한 사람의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상대도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고 함께 힘이 날 것이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기를 바라지 말고 지금 바로 누군가의 ‘곁으로’ 행복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함께 갈 분 손 드세요.
하나의 회사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학교 동창들이거나 한마을 사람들도 아닌데 뭔가에 끌려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하지만 분명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뭔가가 있을 터.
하지만 세상을 들여다보면 과연 우리가 이어져 ‘연결’된 존재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누군가가 고통을 겪고, 눈앞에서 죽어가는데도 딴 세상일인 양 나 몰라라 한다. 아니 거기에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아냥거리거나 매도하기도 한다. 콩 한 쪽이라도 서로 나눠 먹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는 미풍양속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위험한 지역에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만들어진 위로의 진실’에 매달리려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서 거리가 떨어진 이들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고, 거리가 가까운 이들은 ‘고통스러운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이를 ‘동심원 패러독스’라고 서경식 선생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려면 피해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피해의 진실에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노력하고, 가까운 이들일수록 용기를 내어 가혹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경주될 때 우리는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연결된 존재로 ‘곁에서’ 살아갈 때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 결국 함께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설 연휴 전날 지인으로부터 설빔처럼 ‘곁으로’라는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저자인 시인 김응교 님은 원심력을 따라 고통의 진앙지에서 도망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수 없다고 일갈한다. 그 아픔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곁으로’의 구심력이 있는 사회가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무정하다 해도 ‘곁으로’의 방향성을 가진 사람은 있는 법이다. 생색이나 내는 탐욕스런 군상들과는 달리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하는 마음은 잘 보이지 않고 가늘고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곁으로 여행 가는 것은 사랑의 총량을 키우는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자연의 곁으로 가까이 가서 앉을 때 우리는 자연이 되고, 고통받는 존재 곁으로 가면 위로와 응원이 될 것이니 어찌 사랑이며 행복이 커지지 않겠는가.
루쉰은 말했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된다. 누군가의 곁에서 연결된 존재로서의 공감의 교집합을 만들고, 작은 손을 꼭 잡고 뚜벅뚜벅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길, 따뜻한 사람의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상대도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고 함께 힘이 날 것이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기를 바라지 말고 지금 바로 누군가의 ‘곁으로’ 행복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함께 갈 분 손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