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우수(雨水)

우수(雨水)

by 김민정 박사 2016.02.15

꽃눈은 허기를 익혀
내 앞에 피나 보다

코끝을 들이미는
바람의 솔기 사이

게으른 눈을 비비며
기지개 펴는 햇살
- 졸시, 「우수雨水」전문

아직도 하얀 눈이 쌓인 산간지방도 있지만, 입춘(立春)이 지나고 며칠 있으면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절기상의 우수(雨水)이다. 우수(雨水)는 24절기 중의 하나로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뜻으로 날씨가 많이 풀려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트는 시기이다.
제주의 한라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평지인 들녘엔 유채화가 샛노랗게 피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사진을 아는 시인이 이틀 전에 보내왔다. 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오는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아직도 쌀쌀한 바람인데도 그 바람의 기운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봄이 온다고 특별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운 이 겨울이 어서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또한 나뿐이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날씨든, 다른 사람의 마음이든 따뜻함을 좋아하니까. 특히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추우면 더 힘들고 돈 들어갈 곳도 많아 경제적으로 더욱 궁핍을 느끼기에, 추운 겨울이 빨리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더 당연해 보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신석정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특히 젊은이들일 것이다. 많은 학교가 졸업으로 마무리하고 상급생으로 진학하든가, 아니면 사회에 취업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취업하기가 힘들어 졸업을 해도 고민이 많은 것이 청년들일 것이다. 3포를 넘어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을 포기한 청년)라는 말이 떠돌기도 한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셸리의 시를 생각하면서 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려운 시대라고 해서 꿈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혹독한 겨울 날씨 속에 있으면 다시는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없을 것처럼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들은 다시 피어난다. 실패를 겪는다고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꿈 높이를 조절하여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도/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 이성부의 「봄」부분’.
봄날을 기다리며 봄볕으로 자신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는 시간이길 우리 모두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