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어린 손으로 마음 밭을
정성어린 손으로 마음 밭을
by 한희철 목사 2020.05.06
이태 전, 이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3년 개근상 메달이었습니다. 메달을 따로 보관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딘가 구석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3년 개근을 했었구나, 새삼 스러웠으니까요.
당시 살고 있는 집은 의왕이었고 고등학교는 수원에 있었습니다. 마침 수원에 새로 세워진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일부러 시험을 보고 선택한 학교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가서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습니다. 안양을 오가는 기차 통학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기차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한 기차를 놓치면 지각, 기차역으로 바람처럼 내달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밥을 빨리 먹는 데는 그 때 배인 습관과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느 해인가는 큰 홍수가 났고, 차편이 끊겨 학교에 갈 수 없는 날이 있었는데,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한참을 돌아가는 교통편을 찾아 학교를 다녀왔으니까요. 특별히 공부에 열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빠지는 일은 생각 밖의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개근을 하여 메달로 받은 상을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막상 메달을 보니 그래도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건강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다치거나 사고가 없어 가능했던 일,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에 ‘개근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 개근을 한 아이를 친구들이 개근충이라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개근충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한 달 수입이 이백만원 혹은 삼백만원이 안 되는 아이를 조롱하며 부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조롱의 의미로 붙인 ‘충’이라는 말은 모두가 ‘벌레 충’(蟲)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개근충이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어디 한 번 여행도 다녀오지 못하는, 그래서 학교나 꼬박 다닐 수밖에 없는 아이를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개근충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느새 세상이 성실함을 조롱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보다도 성실과 배려와 존중을 더 소중한 가치로 배워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본받아도 좋을 친구를 조롱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린이날을 맞았습니다. 우리들의 내일이 어린이들 마음속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삶은 농사만큼 정직한 것이어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입니다. 잡초와 엉겅퀴가 마음을 뒤덮는 일이 없도록, 정성어린 손으로 마음 밭을 가꿔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심든 심은 것을 열매로 맺는 어린이들의 마음 밭을 말이지요.
당시 살고 있는 집은 의왕이었고 고등학교는 수원에 있었습니다. 마침 수원에 새로 세워진 고등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일부러 시험을 보고 선택한 학교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가서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습니다. 안양을 오가는 기차 통학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기차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한 기차를 놓치면 지각, 기차역으로 바람처럼 내달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밥을 빨리 먹는 데는 그 때 배인 습관과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느 해인가는 큰 홍수가 났고, 차편이 끊겨 학교에 갈 수 없는 날이 있었는데,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한참을 돌아가는 교통편을 찾아 학교를 다녀왔으니까요. 특별히 공부에 열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 빠지는 일은 생각 밖의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개근을 하여 메달로 받은 상을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막상 메달을 보니 그래도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건강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고, 다치거나 사고가 없어 가능했던 일,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에 ‘개근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 개근을 한 아이를 친구들이 개근충이라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개근충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한 달 수입이 이백만원 혹은 삼백만원이 안 되는 아이를 조롱하며 부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조롱의 의미로 붙인 ‘충’이라는 말은 모두가 ‘벌레 충’(蟲)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개근충이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어디 한 번 여행도 다녀오지 못하는, 그래서 학교나 꼬박 다닐 수밖에 없는 아이를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개근충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어느새 세상이 성실함을 조롱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보다도 성실과 배려와 존중을 더 소중한 가치로 배워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본받아도 좋을 친구를 조롱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린이날을 맞았습니다. 우리들의 내일이 어린이들 마음속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삶은 농사만큼 정직한 것이어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입니다. 잡초와 엉겅퀴가 마음을 뒤덮는 일이 없도록, 정성어린 손으로 마음 밭을 가꿔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심든 심은 것을 열매로 맺는 어린이들의 마음 밭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