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잔인한 사(死)월, 희망의 꽃

잔인한 사(死)월, 희망의 꽃

by 이규섭 시인 2020.04.03

‘봄은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올해처럼 실감 나긴 처음이다. 꽃망울이 꽃샘추위에 움츠려 피지 못하거나 시국이 어수선하여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없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올해는 사회와의 거리두기로 봄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춘래불사춘은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됐다.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이라고 읊었다. 오랑캐 땅에서 왕소군이 겪었을 슬픔과 외로움에 대한 헌사다.
왕소군은 중국 전한(前漢) 시대 원제(元帝)의 궁녀로 춘추전국시대의 서시, 삼국시대 동탁의 애인 초선, 당나라 헌종의 비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힌다. 흉노족과 화친을 맺은 왕실은 그 대가로 왕소군을 흉노의 왕 ‘호한야선우’에게 보낸다. 호한야가 죽자 그녀는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정부인 아들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생을 마감했다.
봄이 봄 같지 않아도 꽃은 어김없이 피고 진다. 노란 개나리와 산수유가 지고, 진달래가 연분홍 치맛자락 휘날리며 멀어져 가면 목련과 라일락이 뒤를 잇는다. 우윳빛 피부의 목련은 활짝 펼 때보다 꽃봉우리 때가 더 아름답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는 박목월의 시 ‘사월의 노래’를 읽으며 기품 있는 서양 꽃으로 알았다. 중국이 원산지로 나무에서 핀 연꽃이라 하여 목련(木蓮)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건 훗날 알았다.
정두리 시인은 라일락을 ‘가지마다 숨겨진 작은 향기 주머니’라고 노래했듯 보랏빛 꽃향기는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짙다. 첫사랑과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꽃말처럼 보랏빛 향기는 설렘이다. 우리나라 자생종은 수수꽃다리다. 무명옷처럼 정감이 간다.
‘집콕’을 풍자한 삽화를 카카오톡으로 받고 쓴 웃음 지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팔짱을 낀 청개구리가 ‘봄이 오면 뭐하나∼ 나가지도 못하고∼ 아∼ 미치긋다/ 꽃이 피면 뭣하나∼ 밖에도 못나가는 걸∼ 이기∼ 뭡니까∼’ 춘래불사춘 보다 더 리얼하다.
총선은 다가오는데 코로나에 발목이 잡혀 후보자 얼굴도 공약도 모른 채 비대면 투표를 해야 할 판이다. 경제위기 극복 일환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지만 중앙정부, 광역단체, 기초단체 등에서 3중으로 받는 사례가 생겨 형평성 논란이 인다. 결국은 우리 후대들이 갚아야 할 빚인데, 준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다.
코로나의 상처는 깊지만 빌게이츠의 통찰력 있는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잊어버린 듯한 중요한 교훈을 상기시키기 위해 보내진 것이며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갈파했다. 열네 가지 사유 모두가 마음에 와 닫지만 ‘이 지구가 아프다’는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는 개인의 명성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것도 코로나가 준 교훈이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직업적인 일이 아니라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보호하고 서로에게 이로움이 되는 것이라는 역할을 제시한다. 잔인한 사(死)월에 희망의 꽃 같은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