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고난 속에 피어나는 웃음

고난 속에 피어나는 웃음

by 권영상 작가 2020.03.12

‘코로나19’로 사람들 통행이 부쩍 줄었다. 동네 가게들 역시 한눈에 보아도 휴업 상태다. 손님이 없다. 그렇다고 문 닫을 수도 없는 가게 주인의 애타는 심정을 알겠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심하게 나돌았는데 이젠 아니다. 온 나라가 그렇고 세계가 코로나19로 앓고 있다. 한동안 이러다 끝날 일이 아니라는 말엔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상황에서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전부다. 잔뜩 위축되어 살던 어느 날쯤 단톡방에 카톡이 왔다.
‘긴급 속보’였다. ‘물 마실 때 너무 빨리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급히 마시면 물이 ‘코로나’ 온답니다.’
나는 웃었다. 처음엔 ‘에이, 싱거운!’ 하다가 이렇게라도 한번 웃어보자며 아내에게 보였다. 아내도 슬쩍 웃었다. 그 무렵 또 여기저기서 카톡이 왔다. 같은 내용들이다. 빠르기도 하네! 하다가도 섬처럼 갇혀 사는 내게 웃음을 보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나도 내게 온 ‘긴급 속보’를 멀리 나가있는 딸아이에게 보내고, 또 길 건너 형님에게 보냈다.
2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다. 멈춤, 하던 확진자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열면 예방 수칙 메시지가 2~3개씩 와 있었다.
그 무렵쯤 단톡방 카톡이 또 울었다.
‘제목: 확찐자. 우리 모두 조심해야겠어요. 우리 동네 아줌마가 코로나 바이러스 무서워 아무데도 안 나가고 집안에서 밥만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일주일 지났는데 확찐자로 판명났다네요. 살이 확 찐 자.’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우리 동네 아줌마’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동네 아줌마처럼 코로나가 무서워 집안에 갇혀 살만 찌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그럴 듯 하게 말했다. ‘그 거, 나도 봤어’ 하며 이번엔 아내가 누군가부터 받은 글을 내게 보여줬다.
‘제목: 확찐자 동선 나옴. 살이 확 찐 자 이동경로에요. 식탁>소파>냉장고>소파>식탁>침대>냉장고>침대’
나는 또 웃었다. 보여주는 아내도 우리랑 똑같다며 웃었다. 똑같다며 웃었지만 똑같을 리야 없다. 하지만 이동 동선이 다르다 해도 그 내면에 숨어있는 이동 심리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내의 글을 받아 또 내가 아는 몇몇 이들에게 이 웃음을 전달했다. 혼자만 웃고 말 일이 아니었다. 이 위중한 시기를 건너느라 낙담해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더구나 우리에게 웃음을 보내준 이의 고마움을 생각해서라도 이웃에게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흥부를 사랑한다. 가진 게 없는 흥부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웃음을 안겼다. 밥을 굶으면서 자식을 열둘이나 낳는 일도 그렇다. 기껏 매품을 팔러 가는 일도 우습다. 어찌어찌 쌀 말을 얻어 마당에 솥을 걸고 밥을 하였는데 밥이 산더미 같았다. 이때에 열두 자식을 불러놓고 으스대며 밥 먹이는 장면은 비록 참혹하지만 해학적이다. 고작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금은보화를 바라는 흥미진진한 장면에선 웃음이 절로 난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흥부전이 없었다면 조선 문학은 또 얼마나 싱거웠을까.
우리에겐 유머를 만들어 한번쯤 웃고 넘어갈 줄 아는 DNA가 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나눌 줄도 안다. 그것이 바로 숱한 고비마다 다시 일어서온 우리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