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봄 제3막
인생의 봄 제3막
by 이규섭 시인 2020.03.06
봄이 식탁에 왔다. 향긋한 쑥국이다. 입안 가득 봄기운이 퍼지며 깔깔한 입맛에 생기가 돈다. 쑥에 콩가루를 버물어 된장을 풀고 끓인 쑥국은 담백하고 구수하다. 봄 햇살 머금은 쑥 향기가 깊고 그윽하다.
옥상 화분에서 겨울을 난 장미가 붉은 꽃 순을 내밀었다. 가시오가피도 초록빛 눈을 떴다. 원추리가 기지개를 켜고 작설 찻잎 같은 혀를 드러냈다. 이맘때면 광양매화축제와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축제가 봄 축제의 팡파르를 울렸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취소됐다. 세상이 온통 돌림병 공포로 불안하고 어수선해도 꽃들은 제철이면 어김없이 핀다. 지리산 정기를 품은 노란 산수유를 본 뒤 연분홍 매화를 보러 가는 길목은 늘 봄맞이 인파로 붐볐으나 올해는 한산하다.
내 인생의 봄 제3막을 맞았다. 제1막은 30년 직장생활, 제2막은 퇴직 후 미디어교육 강사 등 바쁘게 이어온 삶이다. 지난달, 퇴직 언론인 단체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칠십대 중반이니 제3막이라 자평한다. 유엔 사무총장이나 대학 총장도 아니고, 정당과 권력 집단의 사무총장도 아니면서 직함은 거창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언론인들 600명 가까이 모인 단체의 살림살이와 행사를 챙겨야 하니 막중한 자리임엔 틀림없으나 명예 없는 명예에 봉사 직이나 다를 바 없다.
43년의 연륜이 쌓인 단체의 회원 가운데 최고령은 103세로 6.25 전쟁 때 종군기자다. 생존한 6.25참전용사도 29명이다. 85세 이상만 195명이니 칠십대 중반은 장년 측에 속한다. 60대는 미성년자 취급이다. 하는 일도 녹록지 않다. 시국 대토론회, 문화역사 탐방, 회고록과 월간 회보 등을 출간한다.
3년 임기인 회장 선거전도 치열하다. 신임 회장으로부터 사무총장 제의를 받고 사양했다. 숫자 다루는 건 젬병이고, 회원들의 성함과 얼굴을 매치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개성 강한 언론인 출신들이라 예우와 관리도 신경 쓰인다. 대선배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맡게 됐다. 선임 내용이 신문에 보도된 뒤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한양 도성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고, 출퇴근 할 수 있으니 축하한다’는 내용이 주류다. ‘그 연세에 활동하는 모습 귀감이 된다’는 후배의 소감도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회보 담당자가 ‘소감과 제언’을 써 달라고 한다. 사무실은 회우들이 스스럼없이 들러 차 마시며 신문 읽고 환담하는 사랑방으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종이신문이 주변에서 사라지는 시대, 사무실에 나오면 다양한 신문을 접할 수 있다. 중앙지는 물론 경제지와 지방지, 기자협회보 등 특수지가 있어 골라볼 수 있다. 믹서커피와 국산 차는 준비되어 있다.
사무총장은 ‘퇴기(퇴직 기자)’다방의 ‘시니어 웨이터’라고나 할까? 서비스 정신에 충실하려면 나비넥타이를 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회우들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은 짧다. 지란지교(芝蘭之交)의 덕목으로 친목의 향기를 뿜었으면 참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선(動線)이 생기고 할 일이 있다는 건 보람이고 행복이다.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가야겠다.
옥상 화분에서 겨울을 난 장미가 붉은 꽃 순을 내밀었다. 가시오가피도 초록빛 눈을 떴다. 원추리가 기지개를 켜고 작설 찻잎 같은 혀를 드러냈다. 이맘때면 광양매화축제와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축제가 봄 축제의 팡파르를 울렸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취소됐다. 세상이 온통 돌림병 공포로 불안하고 어수선해도 꽃들은 제철이면 어김없이 핀다. 지리산 정기를 품은 노란 산수유를 본 뒤 연분홍 매화를 보러 가는 길목은 늘 봄맞이 인파로 붐볐으나 올해는 한산하다.
내 인생의 봄 제3막을 맞았다. 제1막은 30년 직장생활, 제2막은 퇴직 후 미디어교육 강사 등 바쁘게 이어온 삶이다. 지난달, 퇴직 언론인 단체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칠십대 중반이니 제3막이라 자평한다. 유엔 사무총장이나 대학 총장도 아니고, 정당과 권력 집단의 사무총장도 아니면서 직함은 거창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언론인들 600명 가까이 모인 단체의 살림살이와 행사를 챙겨야 하니 막중한 자리임엔 틀림없으나 명예 없는 명예에 봉사 직이나 다를 바 없다.
43년의 연륜이 쌓인 단체의 회원 가운데 최고령은 103세로 6.25 전쟁 때 종군기자다. 생존한 6.25참전용사도 29명이다. 85세 이상만 195명이니 칠십대 중반은 장년 측에 속한다. 60대는 미성년자 취급이다. 하는 일도 녹록지 않다. 시국 대토론회, 문화역사 탐방, 회고록과 월간 회보 등을 출간한다.
3년 임기인 회장 선거전도 치열하다. 신임 회장으로부터 사무총장 제의를 받고 사양했다. 숫자 다루는 건 젬병이고, 회원들의 성함과 얼굴을 매치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개성 강한 언론인 출신들이라 예우와 관리도 신경 쓰인다. 대선배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맡게 됐다. 선임 내용이 신문에 보도된 뒤 축하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한양 도성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고, 출퇴근 할 수 있으니 축하한다’는 내용이 주류다. ‘그 연세에 활동하는 모습 귀감이 된다’는 후배의 소감도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회보 담당자가 ‘소감과 제언’을 써 달라고 한다. 사무실은 회우들이 스스럼없이 들러 차 마시며 신문 읽고 환담하는 사랑방으로 활용되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종이신문이 주변에서 사라지는 시대, 사무실에 나오면 다양한 신문을 접할 수 있다. 중앙지는 물론 경제지와 지방지, 기자협회보 등 특수지가 있어 골라볼 수 있다. 믹서커피와 국산 차는 준비되어 있다.
사무총장은 ‘퇴기(퇴직 기자)’다방의 ‘시니어 웨이터’라고나 할까? 서비스 정신에 충실하려면 나비넥타이를 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회우들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은 짧다. 지란지교(芝蘭之交)의 덕목으로 친목의 향기를 뿜었으면 참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선(動線)이 생기고 할 일이 있다는 건 보람이고 행복이다.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