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정답?
인생의 정답?
by 정운 스님 2020.03.03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끌고 간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 사람들, 참 멍청하네. 누구라도 타고 가면 되지.”
두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아들이 아버지를 말에 태우고 길을 갔다. 그런데 지나가던 행인이 수군대며 말했다.
“아들이 불쌍하네요. 어찌 아버지가 아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까?”
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내려서 아들을 말에 태우고 자신은 고삐를 잡고 걸었다. 또 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가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며 말했다.
“저 자식이 불효자식이군. 어찌 아버지가 고삐를 잡고 가게 하지. 아들이 걷고 아비를 태워야지.”
사람들의 수군대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이 함께 말에 올라탔다. 이렇게 또 한참을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그렇지, 말이 불쌍하군. 어찌 말 한 마리에 두 남자가 타고 가지...... ”
과연 어떤 사람들의 말이 옳은가? 어떤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틀린 것도 없지만 맞는 답도 없다. 어떤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만약 필자가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종교 가운데 부처님 진리가 최고이다.’라고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옳지 못한 행동이다. 공안[스님들이 참선할 때, 의심하는 문구 화두]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사람이 수산 스님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며느리를 나귀 등에 태우고, 시어머니가 고삐를 잡고 길을 간다.”
부처로 상징되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스님의 답변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위치가 바뀌었다. 앞의 이야기처럼 가다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위치가 바뀔 수도 있고, 나귀에 둘이 탈 수도 있으며, 나귀에 아무도 타지 않을 수도 있다. <금강경>에 “무상정등각이라고 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다.”고 하듯이 일정한 정답이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집착하는 법상法相조차 버리라고 하였다. 어떤 행이든 언어이든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든 타인에 끌려가지 않는 주관과 자신만의 개념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진로를 물으면, 대부분 학생들의 답이 한결같다. 이름 있는 회사, 높은 연봉, ‘사’자가 들어있는 직업 등등. 학생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타까울 때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정해놓았다고 해서 인생길의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남이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단 1회의 삶, 재활용되지 않는 인생이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지 말자. 자신만의 인생길, 즐김의 삶을 만들어보자.
“저 사람들, 참 멍청하네. 누구라도 타고 가면 되지.”
두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아들이 아버지를 말에 태우고 길을 갔다. 그런데 지나가던 행인이 수군대며 말했다.
“아들이 불쌍하네요. 어찌 아버지가 아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까?”
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내려서 아들을 말에 태우고 자신은 고삐를 잡고 걸었다. 또 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가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며 말했다.
“저 자식이 불효자식이군. 어찌 아버지가 고삐를 잡고 가게 하지. 아들이 걷고 아비를 태워야지.”
사람들의 수군대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이 함께 말에 올라탔다. 이렇게 또 한참을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그렇지, 말이 불쌍하군. 어찌 말 한 마리에 두 남자가 타고 가지...... ”
과연 어떤 사람들의 말이 옳은가? 어떤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틀린 것도 없지만 맞는 답도 없다. 어떤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만약 필자가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종교 가운데 부처님 진리가 최고이다.’라고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옳지 못한 행동이다. 공안[스님들이 참선할 때, 의심하는 문구 화두]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사람이 수산 스님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며느리를 나귀 등에 태우고, 시어머니가 고삐를 잡고 길을 간다.”
부처로 상징되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스님의 답변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위치가 바뀌었다. 앞의 이야기처럼 가다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위치가 바뀔 수도 있고, 나귀에 둘이 탈 수도 있으며, 나귀에 아무도 타지 않을 수도 있다. <금강경>에 “무상정등각이라고 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다.”고 하듯이 일정한 정답이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집착하는 법상法相조차 버리라고 하였다. 어떤 행이든 언어이든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든 타인에 끌려가지 않는 주관과 자신만의 개념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진로를 물으면, 대부분 학생들의 답이 한결같다. 이름 있는 회사, 높은 연봉, ‘사’자가 들어있는 직업 등등. 학생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지만, 안타까울 때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일률적으로 정해놓았다고 해서 인생길의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인생은 누구의 것인가? 남이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 단 1회의 삶, 재활용되지 않는 인생이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지 말자. 자신만의 인생길, 즐김의 삶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