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휴관 중입니다
지금은 휴관 중입니다
by 권영상 작가 2020.02.27
책상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내가 청년인 줄로 착각한 부주의다. 한번 다친 허리라 늘 조심조심했는데 그만한 일에도 걷기가 힘들다. 그 일로 집안에 갇혀 지내려니 우선 몸이 갑갑하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인터넷을 열거나 가끔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안의 세상은 온통 코로나바이러스로 가득하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무리를 해가며 집을 나섰다. 가까운 정보센터에 들러 책이라도 읽고 싶었다. 아니, 바깥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목도리와 마스크를 하고, 몸에 맞게 천천히 걸어 정보센터에 들어섰다. 담당자가 체온을 측정한 뒤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책을 읽고 싶다는 내 말에 코로나 사태로 열람이 어렵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돌아 나왔다. 2월이지만 햇빛이 환하고 바람마저 부드럽다. 언젠가 친구로부터 들을 근방에 새로 생겼다는 도서관이 생각났다. 거기라면 차를 몰고 여러 차례 지나쳐본 길이다. 나는 공연한 헛수고인 줄 알면서 그쪽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노란 보도블록이 곱게 깔린 소로다. 도시를 벗어난 전원 느낌이다. 길옆은 산인지라 자작나무길이거나 잣나무길이거나. 개나리 숲길 아니면 마른 둑길이다.
허리 통증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그 길을 걸었다. 들길은 들길답게 벌써 봄 느낌을 풍긴다. 햇빛이 드는 둑은 소리 없이 부산하다. 방석식물인 개망초, 뽀리뱅이, 달맞이, 냉이, 개갯냉이 등이 여기저기 보인다. 방석식물이란 추위를 피하느라 방석처럼 흙 위에 납작 엎드려 월동하는 식물이다. 겨울엔 사람 눈이 잘 띄지 않는 흙빛인데 벌써 진한 초록과 자주로 빛깔이 변하고 있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들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 주변엔 그들 말고도 꽃마리, 꿀풀, 봄쑥이며 근방에 밭을 짓는 누가 던져 놓은 씨앗일까. 달래가 꼬물꼬물 커 오른다. 그뿐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엔 우리가 흔히 개불알꽃이라고 부르는 봄까치꽃이 언뜻언뜻 보인다.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고 파란 봄꽃이다. 앙증맞다. 다시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마른 풀 사이로 수도 없이 많이 폈다.
내가 허리병으로 아프네, 아프네, 하며 들어앉아 있는 사이,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은근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이, 작은 것들은 추운 겨울과 맞서며 봄을 살려내고 있었다. 봄은 그런 작은 것들과 함께 깨어나 소리 없이 피어난다.
나는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차를 몰고 갈 땐 가까운 거리였는데, 걸어보니 그 길이 멀다. 추운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서고 양지로 나서고 하며 한참을 걸었다. 간신히 간신히 찾아간 신설 도서관은 입구에서부터 막혀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휴관 중입니다.”
안내하는 분이 사정을 이야기했다.
들길에 봄이 오는 것과 달리 내 앞에 놓인 ‘휴관 중’은 추운 겨울이었다.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걸어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빈손으로 나왔으니 택시를 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휴대폰으로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몰고 온 차로 집에 돌아와 보니 곧 필 것 같던 아마릴리스가 그 사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길 건너 사시던 이모가 이사를 가며 준 것인데 오렌지색 봄을 쏟아낸다.
해마다 이 무렵에 피는 꽃이지만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답답한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어서 세상 가득 봄이 들어와 우리 삶이 좀 산뜻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무리를 해가며 집을 나섰다. 가까운 정보센터에 들러 책이라도 읽고 싶었다. 아니, 바깥나들이를 하고 싶었다. 목도리와 마스크를 하고, 몸에 맞게 천천히 걸어 정보센터에 들어섰다. 담당자가 체온을 측정한 뒤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책을 읽고 싶다는 내 말에 코로나 사태로 열람이 어렵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돌아 나왔다. 2월이지만 햇빛이 환하고 바람마저 부드럽다. 언젠가 친구로부터 들을 근방에 새로 생겼다는 도서관이 생각났다. 거기라면 차를 몰고 여러 차례 지나쳐본 길이다. 나는 공연한 헛수고인 줄 알면서 그쪽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노란 보도블록이 곱게 깔린 소로다. 도시를 벗어난 전원 느낌이다. 길옆은 산인지라 자작나무길이거나 잣나무길이거나. 개나리 숲길 아니면 마른 둑길이다.
허리 통증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그 길을 걸었다. 들길은 들길답게 벌써 봄 느낌을 풍긴다. 햇빛이 드는 둑은 소리 없이 부산하다. 방석식물인 개망초, 뽀리뱅이, 달맞이, 냉이, 개갯냉이 등이 여기저기 보인다. 방석식물이란 추위를 피하느라 방석처럼 흙 위에 납작 엎드려 월동하는 식물이다. 겨울엔 사람 눈이 잘 띄지 않는 흙빛인데 벌써 진한 초록과 자주로 빛깔이 변하고 있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들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들 주변엔 그들 말고도 꽃마리, 꿀풀, 봄쑥이며 근방에 밭을 짓는 누가 던져 놓은 씨앗일까. 달래가 꼬물꼬물 커 오른다. 그뿐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엔 우리가 흔히 개불알꽃이라고 부르는 봄까치꽃이 언뜻언뜻 보인다.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고 파란 봄꽃이다. 앙증맞다. 다시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마른 풀 사이로 수도 없이 많이 폈다.
내가 허리병으로 아프네, 아프네, 하며 들어앉아 있는 사이, 코로나 사태로 우리가 은근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이, 작은 것들은 추운 겨울과 맞서며 봄을 살려내고 있었다. 봄은 그런 작은 것들과 함께 깨어나 소리 없이 피어난다.
나는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차를 몰고 갈 땐 가까운 거리였는데, 걸어보니 그 길이 멀다. 추운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서고 양지로 나서고 하며 한참을 걸었다. 간신히 간신히 찾아간 신설 도서관은 입구에서부터 막혀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휴관 중입니다.”
안내하는 분이 사정을 이야기했다.
들길에 봄이 오는 것과 달리 내 앞에 놓인 ‘휴관 중’은 추운 겨울이었다.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성하지 않은 몸으로 걸어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빈손으로 나왔으니 택시를 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휴대폰으로 아내를 불렀다. 아내가 몰고 온 차로 집에 돌아와 보니 곧 필 것 같던 아마릴리스가 그 사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길 건너 사시던 이모가 이사를 가며 준 것인데 오렌지색 봄을 쏟아낸다.
해마다 이 무렵에 피는 꽃이지만 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답답한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어서 세상 가득 봄이 들어와 우리 삶이 좀 산뜻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