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해마다 지불하는 겨울 볕값

해마다 지불하는 겨울 볕값

by 권영상 작가 2020.02.20

방에서 문득 거실로 나올 때 만나는 기쁨이 있다. 거실 바닥에 소복하게 쏟아져 내린 겨울볕이다. 내 방은 북향이라 햇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기에 한겨울에 만나는 거실 햇살이 반갑다. 반가울 정도가 아니라 마음 구석 샅샅이 환해진다.
소복이 내린 겨울볕에 손을 밀어 넣는다.
내가 우주와 만나는 기분이다. 먼데서 온 이 겨울볕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고물고물 따뜻이 번져간다. 마침내 내 몸이 잘 익은 애벌레처럼 투명해진다. 이제 멀지 않아 들판을 향해 날아가도 될 나비를 꿈꾼다. 볕의 기운이란 오묘하다.
사람을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일도 기쁘지만 조용한 정오쯤, 말없이 찾아와준 겨울볕과 거실에서 단 둘이 만나는 일도 기쁜 일 중에 하나다. 내 손을 맞잡는 그의 손은 언제나 따스하다. 그런 그와 오랫동안 마주 앉아 있는 건 좋다. 아늑하고 편안하고 새로 돋는 파처럼 통통하고 즐거워진다.
겨울볕 속에 텀벙 들어가 해를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는다.
안성에 조그마한 오두막이 있다. 그걸 구할 당시만 해도 집의 방향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집은 동남향이었다. 집 앞에 넓은 고추밭이 있고, 그 너머에 참나무 숲이 우거진 나트막한 산이 있었다. 그때 마침 참나무 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렸는데, 그건 마치 해저음처럼 마음을 깊이 흔들었다. 나는 그만 바람소리에 홀려 덜컥 집을 샀다.
그때는 여름이 가까운 계절, 햇빛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를 때였다. 세상이 늘 지금 같은 줄로만 알았다. 늘상 햇볕은 넉넉하고, 참나무 숲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고, 또한 적당한 그늘이야말로 왜 멋지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근데 그해 겨울을 나면서 처음으로 추위라는 걸 알았다. 동남향의 집은 오전 11시, 해가 뜬 지 두 시간 뒤면 빛이 사라진다. 해가 사라지는 일이 아무 일도 아닌 듯 하지만 아니다. 햇빛은 말 그대로 열에너지다. 해가 사라지면 방은 금방 식고, 서늘해진다. 보일러를 장시간 틀어놓는다 해도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온기에 대면 절반도 못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벽을 뚫어 남향으로 창을 내기로 했다.
남향의 외벽은 쏟아지는 햇살로 볕이 풍부하다. 그러나 창이 없는 한 그 볕은 방안의 서늘함과 무관하다. 아무리 좋은 볕이라도 쓰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수소문 끝에 목수 한분을 모시고 왔다. 아래층은 남향이 주방이라 창을 내기 어렵고, 다락방에 창을 낸다면 낼 수 있겠다고 했다. 내가 걱정스레 비용을 물었다.
“3백은 내셔야 합니다.”그가 서슴없이 말했다. 단순히 벽을 뚫고 창을 거는 게 아니라 지붕의 무게와 벽 내부 골재를 고려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너무 비싸지 않냐고 물었고 그는 또 서슴없이 대답했다.
“겨울 햇볕 가격인데 그만은 해야지요.”그러면서 일주일 간 집을 비워줄 것과 창문 아래 지붕에 상처가 나도 책임을 못 지겠다는 것에 동의하라는 말에 나는 여름에 하겠다며 그 일을 멈추었다.
그는 가고, 여름이 세 번을 지나갔지만 나는 아직 남으로 창을 내지 않고 있다. 살면서 그보다 더한 일이 자꾸 터지면서 생각이 거기에 미칠 새가 없었다. 그러나 겨울을 나며 느끼는 건 겨울이면 안 아프던 곳도 아프고, 웬만한 아픔도 통증이 커진다는 거다. 어쩌면 그게 3백만 원어치의 겨울 볕값을 치르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