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落)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
낙(落)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
by 한희철 목사 2020.02.05
설을 앞두고서도 조용했던 동네가 설이 끝나고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네 모습이 다른 날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설이 돌아오면 온 동네가 들뜨고, 가래떡을 뽑는 방앗간집 앞으로는 긴 줄이 서고, 돼지와 소를 잡고, 음식장만을 위해 장을 보고, 아이들에게 줄 설빔을 사고, 일찍부터 명절을 실감하게 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이 집 저 집 세배를 다니면 차려준 음식에 어느새 배가 부르고, 받은 세뱃돈에 호주머니가 부르고, 전해 들은 덕담에 마음이 부르던 시절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렇게 사라진 것 중에는 윷놀이가 있습니다. 어릴 적 설엔 동네 곳곳에 윷판이 벌어져, 윷을 노는 사람들은 물론 구경꾼들까지도 큰 즐거움을 누렸지요. 오래전 마을에서 벌어진 윷놀이를 보며 스케치를 하듯 남긴 ‘세월’이라는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황산개울 다리 건너 충청도 초입/ 이른바 충청북도 소태면 덕은리/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판이 벌어졌다/ 노장 대 소장/ 그 나이가 그 나이 같은데 편은 두 편이다/ 썩썩 낫으로 깎아 만든 못생긴 윷을/ 길바닥 아무데나 던지면 된다/ 낙(落)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 말은 소주병 병뚜껑에 담배꽁초 네 개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흥이 오른다/ 윷 한 번 치고는 덩실덩실 춤이 한참이고/ 저만치 앞선 말 용케 잡고는/ 얼싸 좋네 얼싸안고 블루스가 그럴듯하다/ 기분 좋아 한 잔 아쉬워서 한 잔/ 질펀하게 어울릴 때/ 술 너무 허지 말어/ 술 먹다가 세월 다 가/ 지나가던 한 사람 불쑥 끼어들자/ 그게 웬 소리 철모르는 소리/ 이게 세월이지/ 암, 이게 세월이야/ 윷판은 끝날 줄을 모르고/ 또 하나의 세월은 그렇게 가고>
그런 기억을 되살려 설을 앞두고 어머니 집에 식구들이 모였을 때 윷을 놀기로 했습니다. 실은 저녁을 먹다가 탁자 아래 놓여 있는 윷과 윷판을 보았습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것이 어머니 마음이겠다 싶었습니다. 편은 남자와 여자, 지는 팀은 설날 아침 설거지를 맡기로 했지요. 얼마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한 편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애매하게 뒤집어져 있는 윷가락을 두고 도다 모다 떼를 써보기도 하고, 말판을 두고 장난삼아 목소리도 높이고, 애매한 경계에 떨어진 윷을 두고 낙이다 아니다 우기기도 하고, 질 것 같은 판을 윷과 모로 단숨에 뒤집고는 춤을 추기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윷판은 웃음판이 되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도 남자편이 졌고, 푸짐한 상 유난히 높이 쌓인 그릇에 달라붙어 뚝딱 설거지를 마쳤습니다.
앞서 인용한 ‘세월’은 오래전에 썼던 글인데, 이번에 옛글을 읽으며 한 줄을 보탰습니다. ‘낙(落)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라는 구절입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던 윷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유로움과 넉넉함입니다. 윷을 놀 때조차 깔아놓은 판에서 벗어나면 실격을 당하는 엄격함을 적용하기보다는, 아무렇게나 던져도 낙(落)이 없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명절과 잔치에 가깝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월대보름을 맞아 윷을 논다면 낙이 없는 윷을 놀아보시지요.
그렇게 사라진 것 중에는 윷놀이가 있습니다. 어릴 적 설엔 동네 곳곳에 윷판이 벌어져, 윷을 노는 사람들은 물론 구경꾼들까지도 큰 즐거움을 누렸지요. 오래전 마을에서 벌어진 윷놀이를 보며 스케치를 하듯 남긴 ‘세월’이라는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황산개울 다리 건너 충청도 초입/ 이른바 충청북도 소태면 덕은리/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판이 벌어졌다/ 노장 대 소장/ 그 나이가 그 나이 같은데 편은 두 편이다/ 썩썩 낫으로 깎아 만든 못생긴 윷을/ 길바닥 아무데나 던지면 된다/ 낙(落)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 말은 소주병 병뚜껑에 담배꽁초 네 개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흥이 오른다/ 윷 한 번 치고는 덩실덩실 춤이 한참이고/ 저만치 앞선 말 용케 잡고는/ 얼싸 좋네 얼싸안고 블루스가 그럴듯하다/ 기분 좋아 한 잔 아쉬워서 한 잔/ 질펀하게 어울릴 때/ 술 너무 허지 말어/ 술 먹다가 세월 다 가/ 지나가던 한 사람 불쑥 끼어들자/ 그게 웬 소리 철모르는 소리/ 이게 세월이지/ 암, 이게 세월이야/ 윷판은 끝날 줄을 모르고/ 또 하나의 세월은 그렇게 가고>
그런 기억을 되살려 설을 앞두고 어머니 집에 식구들이 모였을 때 윷을 놀기로 했습니다. 실은 저녁을 먹다가 탁자 아래 놓여 있는 윷과 윷판을 보았습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것이 어머니 마음이겠다 싶었습니다. 편은 남자와 여자, 지는 팀은 설날 아침 설거지를 맡기로 했지요. 얼마든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한 편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애매하게 뒤집어져 있는 윷가락을 두고 도다 모다 떼를 써보기도 하고, 말판을 두고 장난삼아 목소리도 높이고, 애매한 경계에 떨어진 윷을 두고 낙이다 아니다 우기기도 하고, 질 것 같은 판을 윷과 모로 단숨에 뒤집고는 춤을 추기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윷판은 웃음판이 되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도 남자편이 졌고, 푸짐한 상 유난히 높이 쌓인 그릇에 달라붙어 뚝딱 설거지를 마쳤습니다.
앞서 인용한 ‘세월’은 오래전에 썼던 글인데, 이번에 옛글을 읽으며 한 줄을 보탰습니다. ‘낙(落)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즐거운가’라는 구절입니다. 이제와 생각하니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던 윷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유로움과 넉넉함입니다. 윷을 놀 때조차 깔아놓은 판에서 벗어나면 실격을 당하는 엄격함을 적용하기보다는, 아무렇게나 던져도 낙(落)이 없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명절과 잔치에 가깝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월대보름을 맞아 윷을 논다면 낙이 없는 윷을 놀아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