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by 정운 스님 2020.02.04
일본 최대의 불교 종파인 조동종은 13세기에 개산開山[처음으로 종파가 만들어짐]되었는데, 바로 도오겐[道元, 1200~1253] 선사에 의해서다. 23세의 도오겐 스님이 송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도오겐이 송나라에 도착해 항주 경덕사에 머물렀다. 그런데 이곳에서 연세가 많은 전좌[부엌일 담당]인 승용僧用 스님을 만났다. 승용 스님은 한 여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산에서 갓 따온 송이버섯을 말리고 있었다. 승용 스님은 모자도 쓰지 않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아픔을 참아가며 일에 열중했다. 도오겐이 안타까운 마음에 승용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세납이 어떻게 되십니까?”
“60세입니다.”
“이렇게 더운데, 다른 스님들이나 재가자에게 시키지 않고 왜 혼자 일하고 있습니까?”
“스님은 외국에서 온 모양이군.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일한다면,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연세가 많은데도 수행이 대단하시군요. 그런데 송이 말리는 일을 조금 시원한 때에 하시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네. 이 송이버섯은 해가 쨍쨍 더운 날에 말려야 맛있는 송이가 됩니다.”
도오겐은 승용 스님에게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내가 싫다고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없는 법.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 내 인생이나 수행에 있어 공덕은 내가 짓는 것이다. 곧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햇볕이 강할 때 송이를 말려야 하듯) 기회는 바로 지금 해야지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다. 기회가 지나버리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두 가지 교훈이란 서로 다른 말 같지만 한 단어로 말하면, ‘참된 진실’이다. 시간적로나 공간적으로 인생에 주어진 기회는 한번이다. 두 번 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마조(709~788)선사는 “어디에서든 늘 진실 그대로여야 하고[隨處任眞],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참되어야 한다[立處卽眞].”고 말씀하셨다.
어떤 일에 있어 인생의 좋은 공덕은 자신이 지어야 하는 법이지, 남이 해줄 수 없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종교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이 점은 상통할 거라고 본다.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사찰에서 천도재 의식이나 49재 제사 의식이 있다. 즉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제사를 지내주는 의식이다. 그런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형제가 많아서 자신이 하지 않아도 다른 형제가 제사를 지내주는데, 굳이 자신까지 제사 지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질문하는 사람이 자기 답변까지 준비해서 물어본다.
글쎄... 그런데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무리 형제가 많아도 각각 형제가 부모와의 개별 인연이다. 각 형제마다 자신이 공덕 짓는 일이요, 자신의 효도이지, 다른 형제가 하니까 자신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선행善行 공덕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원 글의 취지로 돌아가자. 송이버섯을 햇빛이 강한 시점에 자신의 공덕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과의 관계이든 바로 그 자리에서 진실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자.
“스님, 세납이 어떻게 되십니까?”
“60세입니다.”
“이렇게 더운데, 다른 스님들이나 재가자에게 시키지 않고 왜 혼자 일하고 있습니까?”
“스님은 외국에서 온 모양이군.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일한다면,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연세가 많은데도 수행이 대단하시군요. 그런데 송이 말리는 일을 조금 시원한 때에 하시면 어떨까요?”
“그렇지 않네. 이 송이버섯은 해가 쨍쨍 더운 날에 말려야 맛있는 송이가 됩니다.”
도오겐은 승용 스님에게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내가 싫다고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없는 법.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 내 인생이나 수행에 있어 공덕은 내가 짓는 것이다. 곧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햇볕이 강할 때 송이를 말려야 하듯) 기회는 바로 지금 해야지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다. 기회가 지나버리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두 가지 교훈이란 서로 다른 말 같지만 한 단어로 말하면, ‘참된 진실’이다. 시간적로나 공간적으로 인생에 주어진 기회는 한번이다. 두 번 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마조(709~788)선사는 “어디에서든 늘 진실 그대로여야 하고[隨處任眞],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참되어야 한다[立處卽眞].”고 말씀하셨다.
어떤 일에 있어 인생의 좋은 공덕은 자신이 지어야 하는 법이지, 남이 해줄 수 없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그리고 종교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이 점은 상통할 거라고 본다.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사찰에서 천도재 의식이나 49재 제사 의식이 있다. 즉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제사를 지내주는 의식이다. 그런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형제가 많아서 자신이 하지 않아도 다른 형제가 제사를 지내주는데, 굳이 자신까지 제사 지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질문하는 사람이 자기 답변까지 준비해서 물어본다.
글쎄... 그런데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무리 형제가 많아도 각각 형제가 부모와의 개별 인연이다. 각 형제마다 자신이 공덕 짓는 일이요, 자신의 효도이지, 다른 형제가 하니까 자신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선행善行 공덕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원 글의 취지로 돌아가자. 송이버섯을 햇빛이 강한 시점에 자신의 공덕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과의 관계이든 바로 그 자리에서 진실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