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는 아침,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아침, 안녕하세요?
by 권영상 작가 2020.01.30
설을 쇠고 떠나는 딸아이를 아침 일찍 전철역까지 배웅했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이 어정쩡하다.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뭣해 동네 산에 오르기로 했다. 설 연휴의 마지막 날, 그것도 이른 시간이라 산은 한적하다. 산모롱이를 돌 때 내 나이만 한 남자분이 숲길을 따라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길을 비켜주려고 길옆으로 한발 내디딜 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뜻밖에도 그분이 그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다행스럽게도 내 입에서 그런 답례가 나왔다.
그리고 그분은 내 곁을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몇 걸음을 떼다가 뒤를 돌아다 봤다. 짙은 초록색 점퍼를 입은 그분은 나와 달리 걸음걸이가 조용조용했다.
어떤 분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설 연휴의 마지막에 이르는 날. 어쩌면 그분 마음 안엔 설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 도시의 산속, 안면도 없는 낯선 이에게 복을 전하는 인사를 할 줄 아는 그분은 누굴까.
험준한 설악이나 지리산의 벼랑길을 오를 때면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 ‘수고하십니다’,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를 건네던 기억이 있다. 인적이 드문 산에서 만나는 반가움과 등산의 수고로움을 서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사람 간에 서로 부딪치고, 경쟁하고, 피로를 자극하는 도심이 가까운 산이다. 타인을 격려하는 일이 나의 이익과 아무 상관 없는 그저 ‘힘내세요!’ 같은 인사와 달리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그 격이 다르다. 타인의 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받고 보니 왠지 그분의 넓은 도량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산 중턱에 올랐을 때다.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사내가 산 중턱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정말이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다. 가끔 이른 아침 시간이면 이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마치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으악새 할아버지처럼 듣기 거북한 소리로 으악! 으악! 비명을 지른다.
그 사내가 물병의 물을 삼켜 쭉 내뱉으며 으악! 소리치려 할 때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문득 그 인사를 그에게 건넸다. 그건 순전히 좀 전 초록 옷을 입은 그분으로부터 받은 인사였다. 그 감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 튀어나왔다.
그이가 삼킨 물을 훅 뱉으며 일어서더니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답례를 했다. 이건 너무도 짧은 순간에 일어난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나도 나의 행동에 놀랐고, 어쩌면 그도 당황했을 터다. 우리는 서로 어정쩡하게 목례를 했다.
오늘은 그이 앞을 그냥 지나 산비탈 길을 올랐다. 다른 때 같으면 거기서 몇 가지 운동을 했을 터인데 사내를 위해 그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가 거기서 자신의 일을 잘 마치고 가기를 바라면서 산을 다 올라 반환점에서 돌아내려왔다.
집에 들어가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문이 열리며 몇몇 사람들이 내린다. 나는 그들을 향해 정중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드렸다. 나를 아는 이가 인사를 받아주었다.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서른 가구가 산다. 시골이라면 한 마을이고, 서로 알기로 한다면 얼굴을 다 알고도 남을 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사 없이 산다. 서로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고 하지만 종국에는 우리가 더 고독해질 뿐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뜻밖에도 그분이 그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다행스럽게도 내 입에서 그런 답례가 나왔다.
그리고 그분은 내 곁을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몇 걸음을 떼다가 뒤를 돌아다 봤다. 짙은 초록색 점퍼를 입은 그분은 나와 달리 걸음걸이가 조용조용했다.
어떤 분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설 연휴의 마지막에 이르는 날. 어쩌면 그분 마음 안엔 설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이 도시의 산속, 안면도 없는 낯선 이에게 복을 전하는 인사를 할 줄 아는 그분은 누굴까.
험준한 설악이나 지리산의 벼랑길을 오를 때면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 ‘수고하십니다’,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를 건네던 기억이 있다. 인적이 드문 산에서 만나는 반가움과 등산의 수고로움을 서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사람 간에 서로 부딪치고, 경쟁하고, 피로를 자극하는 도심이 가까운 산이다. 타인을 격려하는 일이 나의 이익과 아무 상관 없는 그저 ‘힘내세요!’ 같은 인사와 달리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그 격이 다르다. 타인의 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받고 보니 왠지 그분의 넓은 도량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산 중턱에 올랐을 때다.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사내가 산 중턱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정말이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다. 가끔 이른 아침 시간이면 이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마치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나오는 으악새 할아버지처럼 듣기 거북한 소리로 으악! 으악! 비명을 지른다.
그 사내가 물병의 물을 삼켜 쭉 내뱉으며 으악! 소리치려 할 때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문득 그 인사를 그에게 건넸다. 그건 순전히 좀 전 초록 옷을 입은 그분으로부터 받은 인사였다. 그 감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 튀어나왔다.
그이가 삼킨 물을 훅 뱉으며 일어서더니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답례를 했다. 이건 너무도 짧은 순간에 일어난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나도 나의 행동에 놀랐고, 어쩌면 그도 당황했을 터다. 우리는 서로 어정쩡하게 목례를 했다.
오늘은 그이 앞을 그냥 지나 산비탈 길을 올랐다. 다른 때 같으면 거기서 몇 가지 운동을 했을 터인데 사내를 위해 그 자리를 비워주었다. 그가 거기서 자신의 일을 잘 마치고 가기를 바라면서 산을 다 올라 반환점에서 돌아내려왔다.
집에 들어가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문이 열리며 몇몇 사람들이 내린다. 나는 그들을 향해 정중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드렸다. 나를 아는 이가 인사를 받아주었다. 엘리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서른 가구가 산다. 시골이라면 한 마을이고, 서로 알기로 한다면 얼굴을 다 알고도 남을 이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사 없이 산다. 서로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다고 하지만 종국에는 우리가 더 고독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