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흑백의 세상이라니
인공지능 시대에 흑백의 세상이라니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20.01.21
7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라디오만 듣다가 어느 날 고향 마을 옆집에 신기한 텔레비전(TV)이라는 것이 들어왔다. 어른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TV 앞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TV를 볼 수 있었기에 저녁이 되길 기다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라디오의 왕비열전보다 타잔이나 킹콩, 야간비행같은 흑백 TV 프로그램이 당연히 인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곡절 끝에 80년대 초가 되어서야 칼라TV 시대가 되었다.
70년대 말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쉴 새 없이 일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면서 ‘흑백TV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그보다 훨씬 비싼 컬러TV가 나오면 없는 사람들은 더 비참해진다’는 논리가 권력층의 ‘컬러TV 보급 반대 이유’였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이어져 온 TV시대는 최근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 첨단기술을 내세워 상을 휩쓰는 수준에 이르렀다. BTS 등 한류콘텐츠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상품이 되었다.
뜬금없이 웬 TV 타령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칼라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시대로 접어들어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 미래로 질주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흑백논리’로 무장한 채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태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정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정한 답이 아니면 ‘틀렸다’면서 핏대를 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되어서 이기도 하다.
지구상에는 80억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알콩달콩 살아가는 게 지구별이고 세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 세상임에도 왜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이 옳다며 고집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는 걸까. 최첨단의 기술의 혜택을 누리면서 왜 머릿속은 ‘흑백TV’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일제강압기, 한국전쟁과 분단, 압축고도성장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생겨난 후유증이라는 것도 공감 못하는 바 아니다. 문제는 이런 흑백의 틀 속에 갇힌 문화가 야기하는 삶의 구속과 불편함,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데 있다.
가을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색깔의 잎들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한 두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사람의 숲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어우러진 백인백색의 숲이 된다면 어찌 가을 숲보다 아름답지 않을 것인가.
새해가 되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던가.
기존의 흑백상자에 갇힌 삶, 그런 사회가 지속되는 한 새해가 새해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생각과 철학, 논리와 시각 등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을 내려놓고 새해에는 나와 다른 존재들의 그것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시도해보면 좋겠다. 그러할 때 어쩌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맛보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진정 새해의 모습일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아닐는지.
라디오만 듣다가 어느 날 고향 마을 옆집에 신기한 텔레비전(TV)이라는 것이 들어왔다. 어른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TV 앞에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TV를 볼 수 있었기에 저녁이 되길 기다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라디오의 왕비열전보다 타잔이나 킹콩, 야간비행같은 흑백 TV 프로그램이 당연히 인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 곡절 끝에 80년대 초가 되어서야 칼라TV 시대가 되었다.
70년대 말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쉴 새 없이 일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면서 ‘흑백TV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그보다 훨씬 비싼 컬러TV가 나오면 없는 사람들은 더 비참해진다’는 논리가 권력층의 ‘컬러TV 보급 반대 이유’였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그렇게 이어져 온 TV시대는 최근 CES(세계가전전시회)에서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 첨단기술을 내세워 상을 휩쓰는 수준에 이르렀다. BTS 등 한류콘텐츠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상품이 되었다.
뜬금없이 웬 TV 타령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칼라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시대로 접어들어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 미래로 질주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흑백논리’로 무장한 채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태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정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정한 답이 아니면 ‘틀렸다’면서 핏대를 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오버랩되어서 이기도 하다.
지구상에는 80억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알콩달콩 살아가는 게 지구별이고 세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 세상임에도 왜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이 옳다며 고집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는 걸까. 최첨단의 기술의 혜택을 누리면서 왜 머릿속은 ‘흑백TV’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일제강압기, 한국전쟁과 분단, 압축고도성장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생겨난 후유증이라는 것도 공감 못하는 바 아니다. 문제는 이런 흑백의 틀 속에 갇힌 문화가 야기하는 삶의 구속과 불편함, 사회적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데 있다.
가을 숲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 다른 색깔의 잎들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한 두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사람의 숲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어우러진 백인백색의 숲이 된다면 어찌 가을 숲보다 아름답지 않을 것인가.
새해가 되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던가.
기존의 흑백상자에 갇힌 삶, 그런 사회가 지속되는 한 새해가 새해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생각과 철학, 논리와 시각 등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을 내려놓고 새해에는 나와 다른 존재들의 그것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시도해보면 좋겠다. 그러할 때 어쩌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맛보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진정 새해의 모습일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