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by 권영상 작가 2020.01.03
가끔 중요한 강의가 있을 때면 가르멜 수녀원에 있는 테레사 말가리다 수녀님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고. 그러면 그 대답은 인편으로 이렇게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 여기서도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이 있는데 너를 위해 당분간 안 마시는 희생을 바칠게.
그분은 80세. 몸이 약하고 힘이 부족해 봉쇄 수녀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봉쇄 수녀원이란 추측하건대 스스로 그 안에서 외부 출입을 금하며 살다가 생을 마치는 곳인 듯 합니다. 그곳에선 정해진 양 만큼 소량의 과자와 과일과 커피가 주어지는데, 그분은 기도만으로 부족해 어쩌다 마시는 커피 한잔의 즐거움조차 포기하는 고통을 자처한다는 거지요. 그분은 벨라뎃다 이해인 수녀님의 언니 수녀님으로 요 두 해 전에 선종하셨습니다.
지난해 8월 이해인 수녀님께서 갓 출간하신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을 제게도 한 권 보내주셨습니다. 평소에 수녀님 행적을 사랑하고, 수녀님 글과 소망하시는 바를 사랑해왔는데 그 귀한 책을 받으니 기뻤습니다. 마치 그분의 세상을 향한 간절한 기도 한 바구니를 받아든 기분이었습니다. 여느 책들과 달리 어쩌면 그 책의 종잇장과 그 안에 박힌 글자들과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책갈피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성령에 젖어있는 듯 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있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시도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한 글자 삐뚠 성채 안에서 쓰여진 졸문만 못할 테지요. 그분들은 때로 스스로 굶주리면서 기도하는 이들이니까요.
그런 까닭으로 나는 늘 벨라뎃다 수녀님의 시와 산문을 사랑해 왔지요.
<기다리는 행복> 중에서도 ‘사랑 가득한 언니 수첩’이라는 글에 오래 내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타인을 위해, 주림과 극기의 희생으로 기도하는 갈급함의 충격 때문입니다. 글엔 비록 언니라는 표현이 있지만 어쩌면 이분들에게 언니는 세속을 벗어난 호칭일 테고, 그 언니는 타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더욱 그 참기도의 고귀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좋은 기도는 희생과 극기의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누구를 위해 내가 누릴 수 있는 커피 한잔의 기쁨을 기꺼이 버리는 이 사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배부르고는 자신의 기도가 자신이 원하는 그분에게 이르지 못합니다. 배부른 이는 더 큰 물질과 더 나은 안락을 끊임없이 원할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진정한 기도란 부족한 이, 아니면 더 많이 부족한 이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매일 먹고 잠자는 일에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굶주림과 졸음이 재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신적인 것에 굶주림이 없다면 그 생활에 권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언니 테레사 말가리다 수녀님께서 벨라뎃다 수녀님에게 1966년에 보내신 ‘좋은 말씀 수첩’ 속에 적혀있는 파스칼의 글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수녀회 입회 60여 년 동안 이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셨던 겁니다. 굶주림 없는 기도는 권태만 재생할 것이라는.
“사랑이란 희생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벨라뎃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들려주시네요. 올해는 이 깊은 속뜻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분은 80세. 몸이 약하고 힘이 부족해 봉쇄 수녀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봉쇄 수녀원이란 추측하건대 스스로 그 안에서 외부 출입을 금하며 살다가 생을 마치는 곳인 듯 합니다. 그곳에선 정해진 양 만큼 소량의 과자와 과일과 커피가 주어지는데, 그분은 기도만으로 부족해 어쩌다 마시는 커피 한잔의 즐거움조차 포기하는 고통을 자처한다는 거지요. 그분은 벨라뎃다 이해인 수녀님의 언니 수녀님으로 요 두 해 전에 선종하셨습니다.
지난해 8월 이해인 수녀님께서 갓 출간하신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을 제게도 한 권 보내주셨습니다. 평소에 수녀님 행적을 사랑하고, 수녀님 글과 소망하시는 바를 사랑해왔는데 그 귀한 책을 받으니 기뻤습니다. 마치 그분의 세상을 향한 간절한 기도 한 바구니를 받아든 기분이었습니다. 여느 책들과 달리 어쩌면 그 책의 종잇장과 그 안에 박힌 글자들과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책갈피에서 불어오는 바람까지도 성령에 젖어있는 듯 했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있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시도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면 한 글자 삐뚠 성채 안에서 쓰여진 졸문만 못할 테지요. 그분들은 때로 스스로 굶주리면서 기도하는 이들이니까요.
그런 까닭으로 나는 늘 벨라뎃다 수녀님의 시와 산문을 사랑해 왔지요.
<기다리는 행복> 중에서도 ‘사랑 가득한 언니 수첩’이라는 글에 오래 내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타인을 위해, 주림과 극기의 희생으로 기도하는 갈급함의 충격 때문입니다. 글엔 비록 언니라는 표현이 있지만 어쩌면 이분들에게 언니는 세속을 벗어난 호칭일 테고, 그 언니는 타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더욱 그 참기도의 고귀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좋은 기도는 희생과 극기의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누구를 위해 내가 누릴 수 있는 커피 한잔의 기쁨을 기꺼이 버리는 이 사랑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배부르고는 자신의 기도가 자신이 원하는 그분에게 이르지 못합니다. 배부른 이는 더 큰 물질과 더 나은 안락을 끊임없이 원할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진정한 기도란 부족한 이, 아니면 더 많이 부족한 이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매일 먹고 잠자는 일에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굶주림과 졸음이 재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신적인 것에 굶주림이 없다면 그 생활에 권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언니 테레사 말가리다 수녀님께서 벨라뎃다 수녀님에게 1966년에 보내신 ‘좋은 말씀 수첩’ 속에 적혀있는 파스칼의 글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수녀회 입회 60여 년 동안 이 말씀을 가슴에 안고 사셨던 겁니다. 굶주림 없는 기도는 권태만 재생할 것이라는.
“사랑이란 희생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벨라뎃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들려주시네요. 올해는 이 깊은 속뜻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