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로에서 느끼는 호젓함
구도로에서 느끼는 호젓함
by 권영상 작가 2019.11.28
친구도 옛 친구가 더 좋을 수 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서로 소통이 잘 되고 마음이 편하다. 설령 고향이 사라지더라도 어쩌면 그가 자신의 고향이 될 수 있다.
길은 뭐 안 그런가. 길도 어떤 면에서는 새로 난 직선도로보다 구불구불한 옛길이 좋을 때가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다가 나오다가 또 한참을 가다가 마을을 만나면 다시 그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는 길은 역시 구불구불하다.
구불구불하여도 그 길로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다녔고, 먼 길을 가는 장거리 버스도 다녔다. 손수레는 물론 자전거도 다녔고, 5일마다 열리는 읍내 장을 보러 가는 길도 그 길이었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걸어 걸어 다니던 고단한 길.
근데 자동차를 선호하면서부터 그 길이 불편해졌다. 구불구불한 도로는 구도로가 되고, 새로 생긴 크고 시원한 대로가 들판을 뚫고 직선으로 여기저기 났다.
백암 근교에 구도로가 있다.
진천 방향으로 가는 길 중에 죽양대로 17번길이 있는데 그 길을 타고 달려 근곡삼거리에 다다르면 100여 미터쯤에 백암으로 들어서는 조그마한 출구가 나온다. 구도로인 백암로는 여기서 백암읍내까지 300여 미터. 죽양대로를 만드느라 잘려나간 지방도로다.
나는 이 구도로가 좋아 백암으로 갈 때면 이 길을 애용한다. 죽양대로와 달리 청미천을 따라난 나트막한 길이다. 마을버스가 뜸하게 오고, 걸어 오가는 이가 가끔 있을 뿐 호젓하다. 이 길이 무엇보다 좋은 건 이 길이 아가위나무 가로수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들어서면 속도를 낮춘다. 아가위나무가 가득 피워낸 꽃길을 나 몰라라 마구 달릴 수는 없다. 창문을 썩 내려놓고 걸어가듯 천천히 가도 재촉하는 차가 없다. 아가위 꽃길이 아까우면 아무 데고 길가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는 꽃그늘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과일을 먹으며 푸른 논벌과 쏟아지는 봄볕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때로는 차에 넣어온 책을 들고 나와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좋은, 그런 시간이 이 길에 있다.
이 길은 나도 좋아하지만 아내도 좋아한다. 꽃이 피어 하얀, 바람에 향기 날리는 아가위나무 숲길을 싫어하는 이가 어디 있을까. 빨갛게 아가위 익는 가로수 숲길을 싫어하는 이가 또 어디 있을까. 이 길을 갈 때면 아내는 핸들을 잡은 내 손을 움켜잡는다.
제발 천천히! 천천히! 아깝잖아!
우리는 차를 세우고 바깥에 나와 옛길을 바라본다.
길 저쪽에서 누가 이 길을 걸어온다. 한 자리에 서서 그가 가까이로 걸어올 때까지 가로수 풍경을 응시하는 일은 재미있다. 원근법이 있는 캔버스 속 풍경같이 마음이 편안하다.
자동차 길이라면 죽죽 벋은 직선대로가 두 말 할 것 없이 좋다. 그런 길을 가다가도 문득 만나는 구불구불한 구도로는 정겹다. 빠른 속도감 때문에 놓치게 되는 길 가는 멋을 즐길 수 있다. 속도감에 취해 달려온 긴 시간보다 불과 300여 미터 밖에 안 되는 이 짤막한 옛길이 어쩌면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오늘도 아가위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다가 잠시 멈춘다. 아가위 열매가 붉다. 나무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 소리에 끝내 차에서 내렸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호젓한 이 길을 간다. 철모르고 피는 길섶 고들빼기 노란 꽃 하나. 가만히 앉아 두 손으로 바람을 막아주다가 일어선다. 춥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고들빼기 꽃을 위해서라도.
길은 뭐 안 그런가. 길도 어떤 면에서는 새로 난 직선도로보다 구불구불한 옛길이 좋을 때가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다가 나오다가 또 한참을 가다가 마을을 만나면 다시 그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는 길은 역시 구불구불하다.
구불구불하여도 그 길로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다녔고, 먼 길을 가는 장거리 버스도 다녔다. 손수레는 물론 자전거도 다녔고, 5일마다 열리는 읍내 장을 보러 가는 길도 그 길이었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걸어 걸어 다니던 고단한 길.
근데 자동차를 선호하면서부터 그 길이 불편해졌다. 구불구불한 도로는 구도로가 되고, 새로 생긴 크고 시원한 대로가 들판을 뚫고 직선으로 여기저기 났다.
백암 근교에 구도로가 있다.
진천 방향으로 가는 길 중에 죽양대로 17번길이 있는데 그 길을 타고 달려 근곡삼거리에 다다르면 100여 미터쯤에 백암으로 들어서는 조그마한 출구가 나온다. 구도로인 백암로는 여기서 백암읍내까지 300여 미터. 죽양대로를 만드느라 잘려나간 지방도로다.
나는 이 구도로가 좋아 백암으로 갈 때면 이 길을 애용한다. 죽양대로와 달리 청미천을 따라난 나트막한 길이다. 마을버스가 뜸하게 오고, 걸어 오가는 이가 가끔 있을 뿐 호젓하다. 이 길이 무엇보다 좋은 건 이 길이 아가위나무 가로수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들어서면 속도를 낮춘다. 아가위나무가 가득 피워낸 꽃길을 나 몰라라 마구 달릴 수는 없다. 창문을 썩 내려놓고 걸어가듯 천천히 가도 재촉하는 차가 없다. 아가위 꽃길이 아까우면 아무 데고 길가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는 꽃그늘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과일을 먹으며 푸른 논벌과 쏟아지는 봄볕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때로는 차에 넣어온 책을 들고 나와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좋은, 그런 시간이 이 길에 있다.
이 길은 나도 좋아하지만 아내도 좋아한다. 꽃이 피어 하얀, 바람에 향기 날리는 아가위나무 숲길을 싫어하는 이가 어디 있을까. 빨갛게 아가위 익는 가로수 숲길을 싫어하는 이가 또 어디 있을까. 이 길을 갈 때면 아내는 핸들을 잡은 내 손을 움켜잡는다.
제발 천천히! 천천히! 아깝잖아!
우리는 차를 세우고 바깥에 나와 옛길을 바라본다.
길 저쪽에서 누가 이 길을 걸어온다. 한 자리에 서서 그가 가까이로 걸어올 때까지 가로수 풍경을 응시하는 일은 재미있다. 원근법이 있는 캔버스 속 풍경같이 마음이 편안하다.
자동차 길이라면 죽죽 벋은 직선대로가 두 말 할 것 없이 좋다. 그런 길을 가다가도 문득 만나는 구불구불한 구도로는 정겹다. 빠른 속도감 때문에 놓치게 되는 길 가는 멋을 즐길 수 있다. 속도감에 취해 달려온 긴 시간보다 불과 300여 미터 밖에 안 되는 이 짤막한 옛길이 어쩌면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오늘도 아가위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다가 잠시 멈춘다. 아가위 열매가 붉다. 나무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 소리에 끝내 차에서 내렸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호젓한 이 길을 간다. 철모르고 피는 길섶 고들빼기 노란 꽃 하나. 가만히 앉아 두 손으로 바람을 막아주다가 일어선다. 춥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고들빼기 꽃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