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by 정운 스님 2019.11.05

근자에 해외토픽에 ‘선생이 제자를 교화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2019년 10월 중순, 미국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 위치한 파크로즈 고등학교에서 한 남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수업 중 엽총을 들고 나타난 사건이다.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이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날은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어머니가 있는 집에서 자살할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총을 들고 학교로 왔다. 왜 굳이 학교까지 와서 자신을 자해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여학생이 같은 학교 학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총 든 학생을 보고, 학생들이 뛰쳐나오며 소리를 지르자, 이 소식을 들은 축구팀 코치 키아난 로우(27)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학생이 초췌한 상태로 총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괜찮다! 괜찮다!’며 천천히 다가가 학생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자 남학생은 선생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끼고 총을 떨구었다. 이후 선생님은 총을 든 학생에게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널 구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이 남학생은 36개월의 보호관찰과 더불어 정신과 치료를 받을 거라고 한다.
자칫 비극으로 끝날 뻔한 일이다. 필자는 제자에 대한 선생의 헌신을 언급하려는 뜻이 아니다. 학생이 고통과 회의에 빠져 총을 들고 있는 모습만을 보고, 혹 선생님이 물리력으로 그 친구의 총을 빼앗거나 제지하려고 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총을 든 학생 = 불량 학생 = 문제 학생”
이런 공식으로 보는 일이 다반사다. 단순히 눈에 본 현상만을 볼 뿐,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한다. 인간은 누구나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고통 길에 헤맬 때가 있다. 잠시 고난에 빠져 심신 미약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런 상태가 그 사람의 본 모습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사람을 보고 평가할 때 상대를 곡해해서 보고, 자신의 잣대대로 상대방을 저울질한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사고에 갇혀 자신의 관점대로 점수를 매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문답으로 이런 내용이 있다.
당나라 때의 청평 영준(淸平令遵)이 취미 무학(翠微無學)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저는 출가한지 오래되었지만, 불교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취미 선사는 청평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 네게만 말해 줄게.”
시간이 한참 지나 주위에 사람이 모두 사라졌을 때, 청평이 취미선사에게 말했다.
선사는 제자를 끌고 대나무 숲속으로 가더니,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쪽 대나무는 큰데, 저쪽 대나무는 가늘고 작지 않느냐?”
있는 모습 그대로 보는 것이 불법의 진리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곡해하기 때문에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현상만이 아니라 뒷면에 가려진 그 사람[혹은 사건]의 참 모습을 꿰뚫어보는 것, 이 점이 필요하다. 아마 이론적으로나마 그 사람의 참 모습을 보고자 노력한다면, 사람 사이에 불편함이 조금이나 개선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