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누군가를 향하여 등불을 켜는 것은

누군가를 향하여 등불을 켜는 것은

by 한희철 목사 2019.09.03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구수했고, 재미있었고, 따스했고, 속 깊이 날카롭기도 해서 언제 찔렸는지도 모르게 마음이 찔리거나 베이고는 했습니다. 그가 손으로 써서 민들레 씨앗처럼 사방으로 보낸 소식지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아름답고 선한 꿈으로 남았고요. 산을 유난히 좋아하여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 같기도 했습니다.
‘선배가 있었다’고 쓴 것은 그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청년일 것 같았던 그도 때가 되니 평생을 사랑했던 자연의 품에 안겼습니다. 한 줌의 흙으로 왔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 누구라도 예외가 없는 것이지요. ‘돌아가셨다’는 말의 뜻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
좋은 이야기꾼이었던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는 아버지의 등불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대한 후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 등불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1950년대 말 선배는 연천에서 서울까지 장장 이백 리 세 시간이 넘는 길을 기차로 통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복지구의 눈 쌓인 겨울밤, 기차에서 내리면 볼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위로가 되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밤늦게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밝혀놓은 등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밤마다 쪽마루 끝에 등불을 내걸고 아들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밤늦게 기차에서 내려 산 중턱에 등불이 보이지 않는 날은 대개가 궂은 날이었는데 그런 날엔 으레 등불이 플랫폼에 내려와 있곤 하였다 했습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대신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온 것이지요.
어느 날인가는 너무도 고단하여 깜박 잠이 들어 내릴 곳에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갔다가 이십여 리를 걸어오던 날이 있었답니다. 비 오는 가을 밤길이 너무나 무서워서 뛰다시피 집으로 향하다가 거반 집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기차역 쪽으로 옮겼는데, 바로 그곳에서 등불을 만났다 하셨습니다. 기차가 지나간 지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난 시간이었고, 다시 올 기차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선배는 왜 그때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발길을 정거장으로 돌렸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어찌 몰랐겠습니까, 선배가 몰랐다 했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였을 뿐, 선배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시간에도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들이 도착하지 않은 역을 아버지가 떠날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누군가를 위하여 등불을 내건다는 것, 환한 등불을 밝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날이 궂거나 시간이 늦을수록 등불을 들고 돌아올 이를 마중 나간다고 하는 것, 세상에 거룩함이 있다면 그런 것 아니라면 어떤 것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