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고 버틴다는 것
견디고 버틴다는 것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9.08.20
태풍이 밀려오는 광복절 아침, 잿빛 하늘에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늘상 그러하듯이 내 시선은 아파트 뒤편 미타사 숲에 머문다.
어라, 그런데 곧 시들어버릴 것 같던 그곳이 생기를 되찾아 어느새 본래의 녹빛으로 돌아와 있지 않은가.
다행스러움과 안도감이 밀려오며 오염된 강의 자정작용이 그러하듯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에 나도 모르게 찬사가 절로 나온다. 미타사 숲은 가뭄이 들면 나무들이 말라 들어가고 비가 내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물론 그사이에 시들어가는 나무들따라 내 마음도 타들어 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미타사 숲은 나에게는 지구별의 지속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순간 미국의 Death Valley가 생각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동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깝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 기후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이다. 여름의 기온은 58.3 ℃까지 올라간 적이 있으며, 여행자와 동물이 가끔 쓰러지는 경우가 있어 Death Valley(죽음의 골짜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죽음의 계곡은 기업활동에서도 차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죽음의 계곡을 견디고 넘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에.
그런데 2000년대 초 이곳에 겨울에 뜻밖의 비가 내렸고 이어지는 봄에 황무지였던 ‘죽음의 계곡’에 여느 해에서 만나기 어려운 눈부신 야생화가 피어났다고 한다. 죽음의 계곡에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절망의 늪, 메마르고 척박한 황무지 같은 삶도 내가 견디고 버텨내면 언젠가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 내 자신이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있다.
‘다시 되돌아오는 경향’을 뜻하는 말로 ‘적응 유연성’이라고도 하는데 스트레스나 역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또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 그 기능수행을 회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외 없이 누구나 인생길에서 역경과 시련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아주 오랜 시간 극심한 어려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정도의 시련 상황에서도 그것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고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적게 겪기도 한다. 그런데 끝내 버티고 견뎌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되어 온전한 내 삶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가도 언젠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니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도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기에.
삶도 세상도 끊임없이 변한다. 무상(無常)은 인생과 자연의 ‘흔들림 없는’ 이치이다.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돌아보니 일제강점기도 그랬을 것이다. 오래도록 계속될 것 같았던 ‘그들의 세상’도 끝내 패망으로 종결되지 않았던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광복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크지만 결국 버티고 견디면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치’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 ‘죽음의 계곡’이 있다. 그런데 그 계곡은 절대 끝이 아니다.
내가 그 계곡에서 멈출 때라야 끝이 된다. 계곡에서 벗어나려면 잘 견디고 버텨야 한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끝없는 시련이 다가오는 게 우리네 삶이다. 죽음의 계곡에 눈부신 꽃들이 피어나듯 우리도 ‘그 가능성’을 믿고 오늘을 잘 견디고 버텨 나가자. 일상에 최선을 다하면서.
늘상 그러하듯이 내 시선은 아파트 뒤편 미타사 숲에 머문다.
어라, 그런데 곧 시들어버릴 것 같던 그곳이 생기를 되찾아 어느새 본래의 녹빛으로 돌아와 있지 않은가.
다행스러움과 안도감이 밀려오며 오염된 강의 자정작용이 그러하듯 자연의 위대한 ‘회복력’에 나도 모르게 찬사가 절로 나온다. 미타사 숲은 가뭄이 들면 나무들이 말라 들어가고 비가 내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물론 그사이에 시들어가는 나무들따라 내 마음도 타들어 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미타사 숲은 나에게는 지구별의 지속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순간 미국의 Death Valley가 생각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동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깝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 기후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이다. 여름의 기온은 58.3 ℃까지 올라간 적이 있으며, 여행자와 동물이 가끔 쓰러지는 경우가 있어 Death Valley(죽음의 골짜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죽음의 계곡은 기업활동에서도 차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죽음의 계곡을 견디고 넘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기에.
그런데 2000년대 초 이곳에 겨울에 뜻밖의 비가 내렸고 이어지는 봄에 황무지였던 ‘죽음의 계곡’에 여느 해에서 만나기 어려운 눈부신 야생화가 피어났다고 한다. 죽음의 계곡에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절망의 늪, 메마르고 척박한 황무지 같은 삶도 내가 견디고 버텨내면 언젠가 다시 ‘그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 내 자신이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복탄력성이란 말이 있다.
‘다시 되돌아오는 경향’을 뜻하는 말로 ‘적응 유연성’이라고도 하는데 스트레스나 역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또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 그 기능수행을 회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예외 없이 누구나 인생길에서 역경과 시련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아주 오랜 시간 극심한 어려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같은 정도의 시련 상황에서도 그것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고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적게 겪기도 한다. 그런데 끝내 버티고 견뎌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회복되어 온전한 내 삶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가도 언젠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니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도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기에.
삶도 세상도 끊임없이 변한다. 무상(無常)은 인생과 자연의 ‘흔들림 없는’ 이치이다.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돌아보니 일제강점기도 그랬을 것이다. 오래도록 계속될 것 같았던 ‘그들의 세상’도 끝내 패망으로 종결되지 않았던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광복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크지만 결국 버티고 견디면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치’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 ‘죽음의 계곡’이 있다. 그런데 그 계곡은 절대 끝이 아니다.
내가 그 계곡에서 멈출 때라야 끝이 된다. 계곡에서 벗어나려면 잘 견디고 버텨야 한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끝없는 시련이 다가오는 게 우리네 삶이다. 죽음의 계곡에 눈부신 꽃들이 피어나듯 우리도 ‘그 가능성’을 믿고 오늘을 잘 견디고 버텨 나가자. 일상에 최선을 다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