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이웃이라면

이웃이라면

by 한희철 목사 2019.08.14

이웃나라도 이웃입니다. 이웃이 어찌 개인과 개인의 관계뿐이겠습니까? 좋은 이웃을 만난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요. 우리 속담 중에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는 것이 있습니다. 세 닢과 천 냥이 실제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느낌만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옛 어른들은 오래된 경험을 바탕으로 세 닢 주고 집을 사고 천 냥 주고 이웃을 사라고 합니다. 집보다도 이웃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뜻이겠지요.
돌아보면 오늘날에는 이 가치가 거꾸로가 되었습니다. 천 냥 주고 집을 사면서도, 이웃은 세 닢보다 가볍게 여깁니다. 아무리 천 냥짜리 집을 가지고 있으면 무얼 하겠습니까, 이웃을 가볍게 여기면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도 세 닢으로 전락을 하고 마는데요.
최근 일본에서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웃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것들이 뒤엉켜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문제의 본질은 단순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어디 씨알이 먹힐까 싶지만 그래도 일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한 번 독일 부헨발트에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그곳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부헨발트는 나치 강제 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32개국 250,000명이 수용되었고, 강제 노동이나 기아 처형 등으로 6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몇 가지 점에서 놀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간 수용소는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듯 자동차로 달려도 한참이나 걸리는 긴 숲길 끝에 나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던지 수용소로 들어가는 길의 이름은 ‘피의 거리’였습니다. 부헨발트는 상상 이상으로 규모가 컸습니다. 넓은 터가 시원하기는커녕 숨을 턱 막히게 했습니다. 수용소 주변을 겹겹이 둘러친 철조망은 도망에 대해 생각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니까요.
보존하고 있는 건물 안에는 그 당시의 온갖 것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기록들과 사진, 유대인들이 신었던 신발과 안경들, 그중에는 두세 살 아이가 신었을 작은 운동화 한 켤레도 있어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부헨발트를 둘러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거나 가리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정말로 많은 독일의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그곳을 찾아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직하게 바라보며, 방마다 모여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치욕적인 역사를 마주함으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읽혔습니다.
쉽게 감추면 쉽게 고개를 듭니다. 부끄러울 만큼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난날의 과오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만이 그나마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큰소리를 치는 대신 거적 위에 엎드리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웃이라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