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푸른 아드리아해가 그립다

푸른 아드리아해가 그립다

by 이규섭 시인 2019.08.02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성곽이 구시가지 전체를 둥글게 감싼 성채도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극작가 버나드 쇼(1856∼1950)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를 가라’고 극찬한 곳이다. 왜 이곳을 낙원이라고 했을까? 전망대에 올라 전경 보기, 배 타고 외곽 둘러보기, 성벽 걸으며 역사의 향기 느끼기 등 입체 투어에 나섰다.
스르지산(해발 451m) 전망대에 오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와 푸른 아드리아해가 발아래 펼쳐져 황홀하다. 벅찬 감동과 설렘으로 아득히 바라보았다. 작은 배를 타고 성곽과 로크룸 섬 주변을 둘러보는 선박 투어는 밋밋하다. 해안 절벽 위에 철옹성 같은 성채를 쌓은 외관을 보니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두브로브니크 사람들이 외침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짐작이 간다.
입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성벽 걷기. 성벽은 10세기에 건설되어 19세기까지 증축하거나 보완하여 견고하다. 총 길이는 약 2㎞, 최고 높은 곳은 25m, 내륙 쪽은 6m, 두께는 1.5m∼3m다. 성벽 위에 민체타와 보카르 2개의 요새를 만들어 적의 침략을 감시했다. 성곽은 쉬엄쉬엄 걸어도 한 시간이면 한 바퀴 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붉은 지붕에 쏟아지는 햇살은 강렬하다. 꽃이 놓인 열린 창틈으로 침대와 기타가 놓인 집안 풍경은 동화 같다. 도르래를 이용한 빨랫줄엔 가족들의 옷가지가 행복처럼 펄럭인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가옥과 파손된 성은 아물지 않은 내전의 생채기다. 199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유고군과 함께 여러 지역을 점령했다. 유고군은 그해 10월 두브로브니크를 전면 봉쇄하고 건물과 유적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럽연합이 나서 세르비아를 제재했다. 세계의 지성들이 모여 인간 사슬을 만들어 역사가 켜켜이 쌓인 문화유적을 지켰다. 불과 28년 전의 일이다. 유네스코 지원으로 곳곳에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구시가지 입구 팔레문에서 루자광장까지 이어지는 플라차 대로의 대리석은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고딕과 르네상스 등 여러 양식이 혼재된 렉터 궁전, 성 블라이세 성당과 성모승천 대성당이 잘 보전돼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13세기 흑사병을 치료한 곳으로 공공의료 복지의 시초격이다. 그 옆 1317년에 문을 연 ‘말라 브라차’ 약국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으로 지금도 문을 연다. 안으로 들어가니 장미가 그려진 크림을 판다.
가장 인상 깊은 유적은 돔 모양의 공동우물 오노프리오스 분수. 1438년부터 주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했고 지금도 마실 수 있다. 16개의 수도꼭지마다 조각 예술을 입혔다. 도시 전체에서 중세의 중후한 품격을 느낀다. 한국관광객이 늘어나는 휴가철(7월∼9월)을 맞아 두브로브니크 등 3개 지역에 한국 경찰 2명씩 파견하여 치안 활동을 벌인다. 지난 4월 한-크로아티아 ‘관광치안협력 업무협약’에 따른 조치다. 태양의 계절 팔월, 시리도록 푸른 아드리아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