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좋아하시나요?
장마를 좋아하시나요?
by 권영상 작가 2019.07.25
장맛비 좋아하는 이는 별로 없을 거다. 곰팡이 냄새 퀴퀴한 골방 기억 탓에 나도 장맛비와 장마가 싫다. 그런 우리와 달리 알고 보면 장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들도 있다. 그들 중에 내가 잘 아는 노랑망태버섯이 있다.
노랑망태버섯을 처음 만난 건 장마 중의 어느 빤한 날이었다. 구름 사이로 잠깐 쏟아지는 햇살을 보고 동네 산에 올랐다. 산을 한 바퀴 돌아 비에 흠뻑 젖은 골짝길을 타고 내려올 때다. 늙은 귀룽나무 그늘에 누군가 던져놓고 간 듯 노란 실뭉치 하나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다가갈수록 그건 분명 폭신한 느낌의 실뭉치였다. 그러나 더 가까이 가 보고 나서야 나는 내 실수에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이렇게나 예쁜 망태기라니!”
그건 정말이지 망태기였다. 어느 소녀가 뜨개질바늘로 방금 짜놓고 간 장난감 망태기 그대로였다. 망태기 위에 다갈색 모자 꼭지까지.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이 노랑 망태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찌 보면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고 있는 둥근 등잔을 닮았다. 나는 자연이 만들어낸 이 오묘하고도 신비한 조형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알았지만 장맛비를 오래오래 기다린 끝에 돋아나는 노랑망태버섯이었다. 버섯은 다 무섭고 위험한 거라고 알고 있던 내게 노랑망태버섯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장마에 지친 우중충한 산중에서 만나는 샛노란 버섯은 산뜻하면서도 만지면 따스한 느낌이 들 만큼 포근하고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검은색으로 변하여 형태를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인생은 단 하루였다. 그 단 하루를 살기 위해 삼백 쉰 날을 캄캄한 땅속에서 기다렸다. 그가 기다렸다는 그 단 하루라는 것도 하필이면 우중충한 장마 중의 어느 한 날이다. 그는 오직 그 하루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날은 노랑망태버섯에게 가장 즐거운 날이다. 그는 노랑이란 노랑을 다 꺼내어 그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양의 집을 짓고, 하루를 마치 일년처럼, 비 내리는 날을 마치 가장 산뜻하고 빛나는 날처럼 살다가 갔다. 그날은 우리가 탐욕에 빠졌던 날일 수 있고, 우리가 의미 없이 흘려보낸 그날이 그날 같은 어느 하루였을 수도 있다.
다시 여름이 오고 장마가 시작될 때면 그때부터 나는 장맛비를 기다렸다. 그리고 늘 지난해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피어나는 노랑망태버섯을 만났다. 단 하루를 살다가는 그의 축제 같은 이 화려한 생애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올해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백합과 참나리와 원추리가 피어난다. 장맛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도회의 길갓집 담장을 붉게 물들이는 능소화가 있고, 배롱나무가 있다.
장마를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게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길고 긴 장맛비 사이로 언뜻언뜻 고개를 내미는,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빛이 있고, 그때를 기다려 나타나는 커다란 무지개가 있다. 저쪽 빈 하늘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도 있다.
막혔던 가슴을 파랗게 열어주는 이 하늘의 운치 역시 오랜 장마 없이는 만나볼 수 없다. 길고 긴 비 끝의 하늘. 그건 장마를 견뎌내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고단한 삶 끝에서 맞는 위로와 위안의 노래다. 장마가 없다면 어찌 그 기쁨과 행복을 알까.
노랑망태버섯을 처음 만난 건 장마 중의 어느 빤한 날이었다. 구름 사이로 잠깐 쏟아지는 햇살을 보고 동네 산에 올랐다. 산을 한 바퀴 돌아 비에 흠뻑 젖은 골짝길을 타고 내려올 때다. 늙은 귀룽나무 그늘에 누군가 던져놓고 간 듯 노란 실뭉치 하나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다가갈수록 그건 분명 폭신한 느낌의 실뭉치였다. 그러나 더 가까이 가 보고 나서야 나는 내 실수에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이렇게나 예쁜 망태기라니!”
그건 정말이지 망태기였다. 어느 소녀가 뜨개질바늘로 방금 짜놓고 간 장난감 망태기 그대로였다. 망태기 위에 다갈색 모자 꼭지까지.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이 노랑 망태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찌 보면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고 있는 둥근 등잔을 닮았다. 나는 자연이 만들어낸 이 오묘하고도 신비한 조형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알았지만 장맛비를 오래오래 기다린 끝에 돋아나는 노랑망태버섯이었다. 버섯은 다 무섭고 위험한 거라고 알고 있던 내게 노랑망태버섯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장마에 지친 우중충한 산중에서 만나는 샛노란 버섯은 산뜻하면서도 만지면 따스한 느낌이 들 만큼 포근하고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검은색으로 변하여 형태를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인생은 단 하루였다. 그 단 하루를 살기 위해 삼백 쉰 날을 캄캄한 땅속에서 기다렸다. 그가 기다렸다는 그 단 하루라는 것도 하필이면 우중충한 장마 중의 어느 한 날이다. 그는 오직 그 하루를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날은 노랑망태버섯에게 가장 즐거운 날이다. 그는 노랑이란 노랑을 다 꺼내어 그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양의 집을 짓고, 하루를 마치 일년처럼, 비 내리는 날을 마치 가장 산뜻하고 빛나는 날처럼 살다가 갔다. 그날은 우리가 탐욕에 빠졌던 날일 수 있고, 우리가 의미 없이 흘려보낸 그날이 그날 같은 어느 하루였을 수도 있다.
다시 여름이 오고 장마가 시작될 때면 그때부터 나는 장맛비를 기다렸다. 그리고 늘 지난해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피어나는 노랑망태버섯을 만났다. 단 하루를 살다가는 그의 축제 같은 이 화려한 생애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올해도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가 시작되면 백합과 참나리와 원추리가 피어난다. 장맛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도회의 길갓집 담장을 붉게 물들이는 능소화가 있고, 배롱나무가 있다.
장마를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게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길고 긴 장맛비 사이로 언뜻언뜻 고개를 내미는,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빛이 있고, 그때를 기다려 나타나는 커다란 무지개가 있다. 저쪽 빈 하늘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도 있다.
막혔던 가슴을 파랗게 열어주는 이 하늘의 운치 역시 오랜 장마 없이는 만나볼 수 없다. 길고 긴 비 끝의 하늘. 그건 장마를 견뎌내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고단한 삶 끝에서 맞는 위로와 위안의 노래다. 장마가 없다면 어찌 그 기쁨과 행복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