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만난 암탉
산속에서 만난 암탉
by 권영상 작가 2019.07.11
동네 산을 오르다가 숲에서 암탉을 만났다. 어미닭에 가까운 붉고 도도한 닭이다. 인기척을 느낀 암탉은 나를 피해 슬며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신라 계림의 닭을 만나고 헤어진 듯 낯설고 묘한 풍경이었다. 모르긴 해도 병아리가 너무 커져서 여기 시 산속에 두고 간 게 아닐까.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교문 앞에서 샀다며 하얀 아기 토끼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왔다. 우리는 모두 반겼다. 반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기 토끼는 앙증맞고 예쁘고 귀여웠다. 마치 하늘이 주신 보드라운 선물 같았다.
돌아가며 토끼를 안아보고 두 볼로 토끼 잔등을 부벼보고 그랬다. 아기 토끼란 참 묘했다. 손 안에서 꼬무락대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음에서 말라가는 그 어떤 모성애 같은 사랑의 샘을 다시 솟게 만들었다.
“얘 이름 빨간 별이라고 지었어.” 그 무렵 딸아이는 이름 지어주는 걸 좋아했다. 새 한 쌍을 분양받아오면 우선 이름부터 짓느라 며칠을 끙끙댔다. 어항에 든 어린 열대어들도 밥풀, 나비, 다시, 반디, 옛날이야기 이렇게 이름을 지었고, 베란다 화분에 사는 민달팽이는 제 친구 민정이라 불렀다.
그때 딸아이는 안고 온 아기토끼를 눈이 붉은 보석 같다며 빨간 별이라 했다. 빨간 별은 연한 과일 껍질을 좋아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봄이 오면서부터 딸아이와 아파트 마당에 나가 토끼가 좋아하는 씀바귀, 고들빼기, 질경이 잎을 따왔다.
어떨 때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보고 나는 놀랐다. 거실 바닥에 빨간 별이 누어놓은 똥이 흩어져 있었다. 나를 보자 딸아이는 “아빠, 이거 별자리 같아. 그치? 하늘에 떠있는 별자리.” 했다.
그러면서 여기 이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별은 오리온이고, 저기 저거,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저 별은 국자별이야, 하며 낄낄댔다. 빨간 별이 거실 바닥에 쏟아 내놓은 작고 동그란 까만 똥은 딸아이 눈에 그렇게 보였다. 딸아이는 보란 듯이 까치발로 토끼똥 사이를 걸어가며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별하늘을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야. 기분이 아주 좋아.”
빨간 별도 사람과 오래 있으면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
거실바닥에 한쪽 팔을 벌리고 누워 ‘별아, 자자!’ 하면 빨간 별은 팔짝 뛰어올라 팔베개를 베듯 내 팔 위에 떨어져 눕는다. 그러고는 코코 자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사랑을 독차지하던 빨간 별도 몸집이 점점 커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양이 많아지는 배설물과 배설물에서 나는 독한 지린내였다. 거실에서 베란다로 빨간 집을 옮겨보았지만 솔솔 풍기는 냄새를 급기야 이웃집에서도 느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빨간 별을 자연의 품에 돌려주기로 했다. 딸아이와 나는 빨간 별을 차에 태워 우리가 잘 아는 청계산 근처 새정이 마을 뒷산으로 갔다. 거기 산중턱 칡덩굴 앞에 내려놓았다. 칡잎을 뜯던 빨간 별은 이내 덩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고, 붙잡으려고 칡덩굴을 들추어 낼수록 그는 더 멀리 사라졌다.
풀어주러 가긴 했지만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돌아서는 딸아이는 집에 와서도 울었다. ‘자유롭게 잘 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달래 주면서도 그 큰 산의 어둠이 걱정되었다. 근데 오늘, 주인 없이도 잘 살아가는 저 도도한 암탉을 보니 지난 일이지만 마음이 조금 놓인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교문 앞에서 샀다며 하얀 아기 토끼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왔다. 우리는 모두 반겼다. 반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기 토끼는 앙증맞고 예쁘고 귀여웠다. 마치 하늘이 주신 보드라운 선물 같았다.
돌아가며 토끼를 안아보고 두 볼로 토끼 잔등을 부벼보고 그랬다. 아기 토끼란 참 묘했다. 손 안에서 꼬무락대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음에서 말라가는 그 어떤 모성애 같은 사랑의 샘을 다시 솟게 만들었다.
“얘 이름 빨간 별이라고 지었어.” 그 무렵 딸아이는 이름 지어주는 걸 좋아했다. 새 한 쌍을 분양받아오면 우선 이름부터 짓느라 며칠을 끙끙댔다. 어항에 든 어린 열대어들도 밥풀, 나비, 다시, 반디, 옛날이야기 이렇게 이름을 지었고, 베란다 화분에 사는 민달팽이는 제 친구 민정이라 불렀다.
그때 딸아이는 안고 온 아기토끼를 눈이 붉은 보석 같다며 빨간 별이라 했다. 빨간 별은 연한 과일 껍질을 좋아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봄이 오면서부터 딸아이와 아파트 마당에 나가 토끼가 좋아하는 씀바귀, 고들빼기, 질경이 잎을 따왔다.
어떨 때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보고 나는 놀랐다. 거실 바닥에 빨간 별이 누어놓은 똥이 흩어져 있었다. 나를 보자 딸아이는 “아빠, 이거 별자리 같아. 그치? 하늘에 떠있는 별자리.” 했다.
그러면서 여기 이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별은 오리온이고, 저기 저거,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일곱, 저 별은 국자별이야, 하며 낄낄댔다. 빨간 별이 거실 바닥에 쏟아 내놓은 작고 동그란 까만 똥은 딸아이 눈에 그렇게 보였다. 딸아이는 보란 듯이 까치발로 토끼똥 사이를 걸어가며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별하늘을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야. 기분이 아주 좋아.”
빨간 별도 사람과 오래 있으면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
거실바닥에 한쪽 팔을 벌리고 누워 ‘별아, 자자!’ 하면 빨간 별은 팔짝 뛰어올라 팔베개를 베듯 내 팔 위에 떨어져 눕는다. 그러고는 코코 자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사랑을 독차지하던 빨간 별도 몸집이 점점 커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양이 많아지는 배설물과 배설물에서 나는 독한 지린내였다. 거실에서 베란다로 빨간 집을 옮겨보았지만 솔솔 풍기는 냄새를 급기야 이웃집에서도 느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빨간 별을 자연의 품에 돌려주기로 했다. 딸아이와 나는 빨간 별을 차에 태워 우리가 잘 아는 청계산 근처 새정이 마을 뒷산으로 갔다. 거기 산중턱 칡덩굴 앞에 내려놓았다. 칡잎을 뜯던 빨간 별은 이내 덩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고, 붙잡으려고 칡덩굴을 들추어 낼수록 그는 더 멀리 사라졌다.
풀어주러 가긴 했지만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돌아서는 딸아이는 집에 와서도 울었다. ‘자유롭게 잘 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달래 주면서도 그 큰 산의 어둠이 걱정되었다. 근데 오늘, 주인 없이도 잘 살아가는 저 도도한 암탉을 보니 지난 일이지만 마음이 조금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