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길 때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길 때
by 한희철 목사 2019.06.26
이 글을 쓰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마시며 한동안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밖에 있는 작은 공터엔 어느새 초록빛이 가득합니다. 키 작은 코스모스가 잔뜩 자라 올라 땅을 덮었고, 사이사이에 하얀 망초가 피었습니다. 이름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다고 꽃은 서로를 경계하거나 다투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서로가 어울립니다. 한쪽 가장자리에는 공터에선 가장 키가 큰 접시꽃이 피었습니다. 튜브에서 물감을 바로 짜낸 듯 붉디붉은 빛깔로 층을 이룬 꽃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겨 춤을 추다가, 바람이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중심을 잡곤 합니다.
그런 공터 위를 노란 나비가 납니다. 마치 초록의 바다 위를 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나비가 바다의 깊이를 두려워할까요, 나비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의 걸음을 춤으로 삼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또 한 마리의 나비가 보이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누구라도 혼자면 외로운 법이니까요.
공터에 자라난 꽃과 그 위를 나는 나비,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무엇 하나 특별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소소하고 당연한 일상이자 풍경입니다. 하지만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나비가 날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무거울까, 바람이 불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치 우리는 어떠냐는 듯이 참새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와선 담장 위에 앉았습니다. 우리가 없는 세상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냐며 재잘재잘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슬그머니 웃음이 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새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사무실 창이 유리로 되어 있다 보니 뜻하지 않은 일을 경험하곤 합니다. 갑자기 퉁-하는 둔중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 바라보면 날아가던 새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입니다. 깜짝 놀라 방향을 바꿔 날아가는 새도 있지만 워낙 세게 부딪친 새는 그대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럴 때면 새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창을 통해 내다볼 수 있는 하늘의 크기를 새에게 양보하는 것이지요.
오늘 공터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새를 위해 해야 할 새로운 일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담장을 따라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그 나무가 자라 넉넉한 품으로 창을 가린다면 더 이상은 새가 유리창에 부딪칠 일은 없겠다 싶었던 것입니다.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스스로의 생각이 대견하여 야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는 벗들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그렇다고 인간만이 소중한 존재는 아닙니다. 함께 사는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길 때 인간의 아름다움도 지켜지는 것, 새롭게 심을 나무에 깃들 멋진 평화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그런 공터 위를 노란 나비가 납니다. 마치 초록의 바다 위를 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나비가 바다의 깊이를 두려워할까요, 나비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의 걸음을 춤으로 삼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또 한 마리의 나비가 보이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누구라도 혼자면 외로운 법이니까요.
공터에 자라난 꽃과 그 위를 나는 나비,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무엇 하나 특별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소소하고 당연한 일상이자 풍경입니다. 하지만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나비가 날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무거울까, 바람이 불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치 우리는 어떠냐는 듯이 참새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와선 담장 위에 앉았습니다. 우리가 없는 세상도 허전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냐며 재잘재잘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 슬그머니 웃음이 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새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사무실 창이 유리로 되어 있다 보니 뜻하지 않은 일을 경험하곤 합니다. 갑자기 퉁-하는 둔중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 바라보면 날아가던 새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입니다. 깜짝 놀라 방향을 바꿔 날아가는 새도 있지만 워낙 세게 부딪친 새는 그대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럴 때면 새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창을 통해 내다볼 수 있는 하늘의 크기를 새에게 양보하는 것이지요.
오늘 공터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새를 위해 해야 할 새로운 일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담장을 따라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면, 그 나무가 자라 넉넉한 품으로 창을 가린다면 더 이상은 새가 유리창에 부딪칠 일은 없겠다 싶었던 것입니다. 왜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스스로의 생각이 대견하여 야호,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는 벗들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지만, 그렇다고 인간만이 소중한 존재는 아닙니다. 함께 사는 모든 존재를 소중히 여길 때 인간의 아름다움도 지켜지는 것, 새롭게 심을 나무에 깃들 멋진 평화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