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앵두가 익어갈 때

앵두가 익어갈 때

by 권영상 작가 2019.06.13

토요일, 고성에서 문학행사가 있었다. 너무 멀어 참석을 망설이고 있을 때다. 그쪽에서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앵두가 익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그 말을 듣고부터다. 내려가기 어렵다는 내 대답이 천천히 내려가는 거로 바뀌었다.
“결국 앵두를 맛보러 가는 거네?”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앵두가 뭔지 앵두라는 말에 그만 미리 잡아두었던 토요일 일정을 모두 접었다.
달력을 봤다. 망종을 넘어서는 6월이다. 이 무렵이면 고향에도 앵두가 붉게 익는다.
언젠가 어머니 살아계실 때 고향집에 들른 적이 있다.
집은 비어있었다. 내 눈에 담장 너머 앵두나무 앵두가 한창이었다. 앵두가 익고 있다는 어머니 말씀대로 앵두는 연둣빛에서 빨간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살이 오른 앵두 하날 따 앞니로 깨물었다. 입안이 찡하도록 새콤하다. 새콤해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손은 앵두나무 앵두를 향했다.
그렇게 몇 개를 더 따먹고 돌아설 때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랑 앵두나무 그늘에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보니 올 때는 못 보던 감꽃이 발아래 떨어져 있다. 감나무에 어린 감이 맺히고 있다. 나는 하얀 꽃만 골라 주워 풀잎에 꿰었다.
“손을 이리 주세요.”
어머니가 내미신 손목에 그걸 묶어드렸다. 감꽃 손목 시계가 됐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오랜 병고 끝에 간신히 일어나신 어머니의 손은 희고 앙상했다. 어머니는 그날 해가 질 때까지 막내가 해준 것이라며 감꽃 시계를 차고 계셨다.
나는 기어코 고성에 내려갔다. 대가면 어느 마을에 버스가 섰고, 거기에서 내렸다. 지난해에 와 보아 알지만 농가 몇 채가 이어지는 길을 가다 보면 접시꽃이 키 높이만큼 커 오르는 집이 있다. 그 집 울타리에 내가 아는 앵두가 올해도 붉게 익고 있었다. 슬며시 손을 뻗어 앵두 한 알을 따 입에 넣는다. 온몸이 소스라치듯 새콤하다.
앵두는 무르익은 것보다 풋사랑의 입술처럼 새콤할 때가 좋다. 이제 막 붉어가는 앵두 몇 알을 따들고 골목길 끝에 이르자, 판하게 논벌이 나온다. 나는 논두렁길에 들어섰다. 더러 모내기를 한 논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었다. 논바닥을 판판하게 골라놓고 모내기하기 마침맞게 물을 채웠다. 무논에 저쪽 내가 가야 할 푸른 산이 내려와 얼비친다. 산 너머 구름도, 무논을 건너가는 전봇대며 전깃줄이며 전깃줄에 앉은 산비둘기도 고적하니 떠 있다. 구구구,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무논 물속에서 울려 나온다.
모내기를 마친 논귀에 드문드문 박아둔 모춤은 필경 모살이가 안 된 자리를 때우려고 둔 거겠다. 모춤을 쥐고 멀리 던져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논두렁길을 건너 산비탈 길을 오르는데 보니 길옆에 뱀딸기가 지천이다. 걸음을 멈추고 앉아 뱀딸기를 따 입에 넣어본다. 보리가 익는 고향 밭둑길에서 따먹던 그 상큼한 맛이 되살아난다.
이 길 끝에 문학행사가 열리는 ‘문학의 숲’이 있다. 나처럼 숲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들 얼굴에 나무숲의 초록물이 잔뜩 묻어있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마삭줄 꽃향기 가득한 숲을 거닐었다.
저녁 후식으로 하얀 대접 가득 붉은 앵두가 나왔다. 앵두를 먹으며 삶에 대하여 시에 대하여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6월로 들어서는 계절이 인생처럼 점점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