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
솔개
by 김민정 박사 2019.04.19
성근 그 죽지로는 저 하늘을 날 수 없다
쏟아지는 무수한 별 마디 굵은 바람 앞에
솟구쳐 비상을 꿈꾸는
언제나 허기진 새
이 발톱, 이 부리로 어느 표적 낚아챌까
돌을 쪼고 깃털 뽑는 장엄한 제의祭儀 끝에
파르르 달빛을 터는,
부등깃 날개를 터는,
점멸하는 시간 앞에 무딘 몸 추스르고
붓촉을 다시 갈고, 꽁지깃 벼린 날은
절정의 피가 돌리라
내 식은 이마에도
- 김연동, 「솔개」전문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자기 노력을 하고, 다른 모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늘 새롭게 자신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긍정적으로 살며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을 긍정하면서도 더 나은 자아를 위해, 더 멋진 내일을 위해 우리는 계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언제나 ‘솟구쳐 비상을 꿈꾸는 / 언제나 허기진 새’인 것이다.
봄이면 새 꽃을 피우고, 새 순을 틔우는 나무들도 그렇다. 그냥 감상하고 지나가는 우리로서는 꽃이 아름답다고, 새순이 예쁘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을 피우기 위해 나무는 맨몸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뎌야 하고 봄이면 뿌리를 뻗으며 땅속으로부터 부지런히 물을 빨아들여 꽃과 잎을 피울 준비를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감상하는 인간은 너무 쉽게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 꽃 피는 순간만을, 그리고 잎 피는 순간만을 예쁘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을 피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그들은 준비해 왔을 것이다. 스스로 죽지가 성기다고 생각할 때, ‘이 발톱, 이 부리로 어느 표적 낚아챌까’라는 회의가 들 때, 솔개가 ‘돌을 쪼고 깃털 뽑는 장엄한 제의’를 하듯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앞으로 나갈 준비를 언제나 하는 것이리라.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쉽게 탄생된 것이 없다는 깨달음은 모든 것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된다.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새 꽃을 피우고, 새 순을 피우며 살아있는 나무들, 그들이 고맙다. 우리가 무심히 보아 넘기는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그들만의 성장을 계속하며 살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살아가는 날도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쌓아가고 완성해 가는 날들일 것이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도 살아있기 위해서는 순간도 헛되이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세상의 지식을 빨아들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세상의 칭송을 듣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무는 누가 칭송해 주어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우는가? 김윤성 시인의 ‘나무’라는 시가 새삼 떠오른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쏟아지는 무수한 별 마디 굵은 바람 앞에
솟구쳐 비상을 꿈꾸는
언제나 허기진 새
이 발톱, 이 부리로 어느 표적 낚아챌까
돌을 쪼고 깃털 뽑는 장엄한 제의祭儀 끝에
파르르 달빛을 터는,
부등깃 날개를 터는,
점멸하는 시간 앞에 무딘 몸 추스르고
붓촉을 다시 갈고, 꽁지깃 벼린 날은
절정의 피가 돌리라
내 식은 이마에도
- 김연동, 「솔개」전문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자기 노력을 하고, 다른 모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늘 새롭게 자신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긍정적으로 살며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을 긍정하면서도 더 나은 자아를 위해, 더 멋진 내일을 위해 우리는 계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언제나 ‘솟구쳐 비상을 꿈꾸는 / 언제나 허기진 새’인 것이다.
봄이면 새 꽃을 피우고, 새 순을 틔우는 나무들도 그렇다. 그냥 감상하고 지나가는 우리로서는 꽃이 아름답다고, 새순이 예쁘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을 피우기 위해 나무는 맨몸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뎌야 하고 봄이면 뿌리를 뻗으며 땅속으로부터 부지런히 물을 빨아들여 꽃과 잎을 피울 준비를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감상하는 인간은 너무 쉽게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 꽃 피는 순간만을, 그리고 잎 피는 순간만을 예쁘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을 피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그들은 준비해 왔을 것이다. 스스로 죽지가 성기다고 생각할 때, ‘이 발톱, 이 부리로 어느 표적 낚아챌까’라는 회의가 들 때, 솔개가 ‘돌을 쪼고 깃털 뽑는 장엄한 제의’를 하듯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앞으로 나갈 준비를 언제나 하는 것이리라.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쉽게 탄생된 것이 없다는 깨달음은 모든 것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된다.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새 꽃을 피우고, 새 순을 피우며 살아있는 나무들, 그들이 고맙다. 우리가 무심히 보아 넘기는 시간 속에서도 그들은 그들만의 성장을 계속하며 살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 살아가는 날도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쌓아가고 완성해 가는 날들일 것이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도 살아있기 위해서는 순간도 헛되이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세상의 지식을 빨아들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세상의 칭송을 듣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무는 누가 칭송해 주어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우는가? 김윤성 시인의 ‘나무’라는 시가 새삼 떠오른다.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