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사는 나무처럼
둥글게 사는 나무처럼
by 강판권 교수 2019.03.18
나무는 둥글게 사는 존재다. 나무가 줄기를 둥글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햇볕을 많이 받기 위해서다.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햇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생명체 중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생존하는 것도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만든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거부하는 것이 많을수록 인간의 삶은 힘들지도 모른다. 소통 혹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나무의 몸은 둥글지만 자세히 보면 둥근 모습도 아주 다양하다. 나무의 줄기 모양은 나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거의 같은 비중으로 햇볕을 받더라도 나무마다 줄기의 색깔이 다르다. 더욱이 줄기의 색깔과 가지의 색깔도 큰 차이가 있다. 나무 중에는 줄기에 가시를 가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가시가 없는 것도 있고, 줄기가 매끈한 것이 있는가 하면 거친 것도 있다. 나무마다 줄기의 모습이 다른 것은 나무마다 삶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나무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줄기의 모습이 다른 경우도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소나무 중에는 줄기가 성장하면서 붉은 색으로 변하는 나무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소나무를 적송이라 부른다. 적송은 줄기가 붉어서 붙인 이름이다. 소나무는 어렸을 때는 붉지 않다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위에서 아래로 붉은 줄기로 변한다. 그러나 소나무 중에서도 평생 붉은 색으로 변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도 있다. 이팝나무의 경우는 어릴 때 줄기의 껍질이 벗겨지는 모습을 띠지만 나이가 들면서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 다소 매끈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팝나무의 줄기는 어린 모습과 나이 든 모습이 상당히 달라서 줄기만으로 나무를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엄나무의 줄기는 나이가 많은 경우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엄나무는 어린 시절에는 줄기에 강한 가시를 갖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시가 사라진다. 엄나무가 스스로 가시를 제거하는 것은 세상의 풍파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나무가 가시를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침입을 막겠다는 방어 전략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가시를 갖지 않는 것은 가시 없이도 상대방의 침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나무의 경우 나이가 엄청나게 많으면 줄기의 색깔도 짙게 변한다. 예컨대 강원도 원주 신림면의 성황숲의 천연기념물 엄나무는 나이가 몇 백 살이라서 100살 미만의 엄나무와 줄기가 전혀 다르다.
나무는 줄기를 둥글게 만들어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고 있다. 모나면 세상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인간의 삶도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도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살아가야 한다. 둥글게 사는 것은 개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발휘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무가 햇볕을 받아 성장하듯이 인간도 세상의 모든 것에 귀를 기울여야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특히 지도자들은 나무처럼 둥글게 살아가야만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의 소리를 골고루 들어야만 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한 쪽 소리만 듣고 자신의 주장만 외치고 있다.
모든 나무의 몸은 둥글지만 자세히 보면 둥근 모습도 아주 다양하다. 나무의 줄기 모양은 나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거의 같은 비중으로 햇볕을 받더라도 나무마다 줄기의 색깔이 다르다. 더욱이 줄기의 색깔과 가지의 색깔도 큰 차이가 있다. 나무 중에는 줄기에 가시를 가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가시가 없는 것도 있고, 줄기가 매끈한 것이 있는가 하면 거친 것도 있다. 나무마다 줄기의 모습이 다른 것은 나무마다 삶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나무라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줄기의 모습이 다른 경우도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소나무 중에는 줄기가 성장하면서 붉은 색으로 변하는 나무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소나무를 적송이라 부른다. 적송은 줄기가 붉어서 붙인 이름이다. 소나무는 어렸을 때는 붉지 않다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위에서 아래로 붉은 줄기로 변한다. 그러나 소나무 중에서도 평생 붉은 색으로 변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도 있다. 이팝나무의 경우는 어릴 때 줄기의 껍질이 벗겨지는 모습을 띠지만 나이가 들면서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 다소 매끈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팝나무의 줄기는 어린 모습과 나이 든 모습이 상당히 달라서 줄기만으로 나무를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엄나무의 줄기는 나이가 많은 경우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엄나무는 어린 시절에는 줄기에 강한 가시를 갖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가시가 사라진다. 엄나무가 스스로 가시를 제거하는 것은 세상의 풍파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나무가 가시를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침입을 막겠다는 방어 전략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가시를 갖지 않는 것은 가시 없이도 상대방의 침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나무의 경우 나이가 엄청나게 많으면 줄기의 색깔도 짙게 변한다. 예컨대 강원도 원주 신림면의 성황숲의 천연기념물 엄나무는 나이가 몇 백 살이라서 100살 미만의 엄나무와 줄기가 전혀 다르다.
나무는 줄기를 둥글게 만들어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고 있다. 모나면 세상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인간의 삶도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도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살아가야 한다. 둥글게 사는 것은 개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발휘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나무가 햇볕을 받아 성장하듯이 인간도 세상의 모든 것에 귀를 기울여야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특히 지도자들은 나무처럼 둥글게 살아가야만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의 소리를 골고루 들어야만 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한 쪽 소리만 듣고 자신의 주장만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