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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고픈 사람들

웃음이 고픈 사람들

by 이규섭 시인 2019.02.15

웃음 고픈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에 관객 1300만 명(12일 기준) 넘게 보약 같은 웃음 웃으려 극장을 찾았다. 관객 동원 천 만 넘는 영화는 가능하면 보려 했고 대부분 봤다. 시류에 뒤처진 꼰대소리 듣고 싶지 않고 “천 만 영화 봤어” 모임 속 대화에 끼지 못해 주눅 들지 않기 위해서다.
천 만 관객 동원의 저력은 뭘까. 영화 리뷰와 평론가들의 평가를 검색해 봤다. ‘극한직업’은 마약전담반 형사들이 잠복근무하려고 범죄 조직 아지트 맞은 켠 치킨집을 인수한다. 치킨 맛집 소문이 나면서 좌충우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수사극이다. 설정 자체가 웃긴다.
전문가들은 흥행 공식이 없는 것을 오히려 흥행 비결로 꼽았다. 흥행 공식은 거액의 제작비 투자, 톱 배우 출연, 주제 의식 세 가지 인데 ‘극한 직업’엔 이 세 가지가 다 빠졌다. 코미디 장르에 충실할 뿐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묵직한 주제 의식이 없고 이념의 색채를 덧칠하지 않았다. 흔한 판타지도 없고 신파를 끼워 넣지 않아 편하게 봤다.
다른 평론가는 “말맛과 손맛이 잘 살아 있고, 유해성도 적으면서 잘 가공됐으며 세심하고 리듬감 있는 연출로 코미디 영화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말맛을 내려다보니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는 개그프로를 보는 느낌이다. 마약반의 해체 통보를 받으러 경찰서장 앞에서 훈시를 듣던 반장은 휴대폰으로 배달주문 전화를 받는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낮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네, 수원왕갈비통닭입니다” 설정과 대사가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어색하다.
“서민들이 만만하게 먹는 게 치킨이고, 퇴직 후 만만하게 차리는 게 치킨집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친근하게 접근한 것이 공감대를 이끌었다”는 또 다른 평론가의 평가에도 공감한다. 한 기자는 흥행 요인으로 감독의 재치 있는 대사와 연출을 꼽았다. 마약반 5인방으로 열연한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코믹 수사극이지만 쫓고 쫓기는 마약범 검거 과정의 폭력과 해피엔딩은 고전적이다.
개인적 견해는 설 연휴가 긴 데다 비와 미세먼지로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극한직업’과 경쟁할 영화도 없었다. 경기불황과 팍팍한 살림살이에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웃고 싶은 웃음 고픈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 상영 111분 동안 서너 차례 피식 웃었을 뿐이다. 뒷줄의 젊은 여성은 소리 내 연신 웃는다. 웃으러 왔다가 웃지 않았으니 웃음에 지나치게 인색한 건 아닌지 자괴심이 든다. 소리 내 웃는 건 경박스럽다는 엄숙주의에 매몰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시각, 청각, 촉각이 제대로 작동해야 통쾌, 유쾌, 상쾌하게 웃을 수 있는데 나이와 함께 웃음보 주변의 뇌세포가 노화된 탓일 수도 있다.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는 무소증(無笑症) 환자는 아니다. 나도 가끔씩 웃길 줄 아는 유머니스트이니까. 생각이 깊어지면 웃음이 사라진다. 단순해져야 보석 같은 웃음을 해맑게 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