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무슨 위원회가 그리 많은가

무슨 위원회가 그리 많은가

by 이규섭 시인 2018.12.21

옛날에 가족들은 물론 식솔까지 가는귀를 먹은 집이 있었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데 나무장수가 “나무 사려! 나무 사려!”하고 지나간다. 주인 영감은 이 말을 듣고 “이 늙은 것을 어쩌자고 또 부역을 나오라는 거여?”하며 화를 벌컥 내자, 곁에 있던 마누라가 “점잖지 못하게 밥에 돌 좀 들었기로 그렇게 화낼 건 뭐유?” 하고 투덜거린다.
그러자 아들은 “저 요즘 술 안 마셔요”하고 시치미를 떼니까, 며느리는 “어제 콩죽 사온 거 어린애 먹이려고 사온 거지 저 먹자고 사 온 줄 아세요”하고 얼굴을 찡그린다. 이를 본 계집종은 “아침에 생선 사고 남은 돈 저 한 푼도 안 떼어 먹었어요”하며 도리질을 치니까, 머슴은 “이놈의 집구석은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나가라고 그래”하며 밖으로 나갔다.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가족이 제 마음속에 품은 말만 토해놓는다. ‘귀머거리 가족의 우화’는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TV 연예프로 가족오락관의 ‘고요 속의 외침’을 빼닮았다. 맨 앞에선 화자가 귀를 막은 앞사람에게 단어나 숙어를 큰 소리로 외치면, 표정과 입 모양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맞추고, 다시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면서 마지막엔 전혀 엉뚱한 말로 변해 웃게 만든다. 말이란 몇 단계를 거치면 원래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왜곡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말이 말을 낳는 회의가 잦은 조직일수록 중구난방 되기가 일쑤다. 남의 얘기는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 목청을 높이다 끝나거나 상사의 일방적 지시로 마무리된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뒷감당이 부담스러워 제안을 꺼린다. 그런 조직일수록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무원 조직도 ‘회의만 하다 퇴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회의가 잦다.
100년 앞을 내다보라는 교육정책도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백가쟁명 소리만 요란했다. 2022학년도부터 적용되는 대입제도 개편안의 추진 과정을 보면 위원회를 다단계처럼 거쳤다. 교육부는 대입제도개편특별위원회에 개편안 하청을 줬다. 재하청을 받은 국가교육회의에서는 공을 시민참여 단체인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에 넘겼다. 공론화위원회에서는 4가지 의제를 놓고 다양한 심사와 토론 과정을 거쳐 대입제도개편 권고안을 만들어 교육부에 올렸다. 대입개편은 1년 동안 돌고 돌아 갈등만 부추기고 별반 달라진 건 없다.
우리나라는 ‘위원회 공화국’ 소리가 나올 정도로 위원회가 차고 넘친다. 각종 위원회가 521개(9월말 기준)나 된다니 놀랍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그 많은 위원회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궁금하다. 위원회는 정책자문과 수립 및 집행에 필요한 기획·심의·평가도 맡는다. 법적 위임 없이 설치된 위원회가 직접 수사의뢰를 남발하여 편법·탈법 논란이 일기도 한다.
관료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떠맡은 위원회를 관리하는데 시간을 빼앗긴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국회 답변에서 “위원회 문제에 머리가 아프다”고 실토할 정도로 위원회가 많아도 너무 많다. 정권의 짐이 돼 버렸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위원회는 옥석(玉石)을 가려 정비할 필요가 있다. 몸집이 가벼워야 추진 동력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