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들어가는 12월
겨울로 들어가는 12월
by 권영상 작가 2018.12.06
겨울로 들어가는 12월. 바쁘다. 우선 겨울을 맞는 일이 시급하다. 눈다운 눈이 벌써 내렸다. 마음이 급해지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들도 이미 12월, 겨울에 가 있다. 그들이 얼지 않도록 짚싸개를 해줘야 한다. 사람의 할 일을 제쳐두고 급한 대로 안성에 내려왔다.
그러나 정작 짚 한 단 구하지 못했다. 양재 꽃시장에도 짚은 없었고, 농가가 가까운 백암시장에도 없다. 어떻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차를 몰아가는 길옆 눈벌에 탈곡을 한 짚들이 죽 깔려있긴 하다. 하지만 논 주인을 알 수 없으니 섣불리 건들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우고, 논둑에서 바람을 맞는 마른 풀을 꺾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볏짚 두 단치 마른 풀을 꺾어와 나무마다 싸개를 해 나갔다. 대추나무부터 했다. 지난해에 심었는데 올가을에 벌써 대추 서너 대접을 내주었다. 크기도 크고 맛도 좋았다. 대추나무가 내게 대추 맛을 보여줬으니 보답할 차례는 나다. 대추나무 밑동에 거름을 넉넉히 주고, 구해온 마른 풀로 누가 보아도 예쁘게 나무싸개를 했다.
모과나무 역시 향기롭고 노란 일곱 개의 가을을 품어 내게 주었다. 그것은 예측 이상의 고마운 선물이다. 보살펴 주면 주는 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게, 제 능력껏 돌려주는 나무의 성실함에서 내가 배울 일은 많다. 대체 나무는 어느 별에서 온 종족일까. 베풀기를 즐긴다. 상대가 누구든, 상대의 머릿속에 어떤 이상과 꿈이 있든 차별하지 않는다. 상대의 도덕성을 측정하거나 빈부를 상관하지 않는다.
나무는 자신을 선택한 이가 누구든 그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나무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연의 천성이 그러하듯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또한 자연과의 약속대로 열매를 맺어 과실을 그의 주인에게 바친다. 나무는 비굴해 보이는 듯하지만 또한 정직하다.
자두나무며 배롱나무, 매실나무, 꽃복숭아며 포도덩굴까지 나무싸개를 해주고 손을 털었다. 쟁기도 쟁기간에 집어넣고, 장갑을 벗어 손을 씻고 보니, 저쪽 마당귀에 나무싸개 없이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친구가 뚱딴지 같이 심어놓고간 고욤나무다.
“큰일은 못해도 경계 노릇은 할 거다.”
친구 말대로 경계 노릇밖에 못하는 꽃이며 열매며 뭣하나 신통한 게 없는 나무다. 그렇기는 해도 그 나무만 뺀 일이 마음에 걸렸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괜히 고욤나무에 눈이 갔다. 아무리 나무라 해도 이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나를 얼마나 원망할 텐가. 다들 싸개를 안 했다면 추워도 같이 추우면 되지만 혼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조금만 추워도 나만 추울 거라는 마음에 서러움이 이만저만 아닐 테다.
성가셔도 다시 장갑을 찾아들고 찬바람을 쐬며 들녘에 나가 마른 풀을 베어왔다. 모자란 듯 싶어 메리골드 꽃대와 잘 섞어 정성껏 싸개를 해주었다. 그걸 해주고 일어서며 보니 나무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소외감의 위기에서 벗어난 어린아이처럼 내게 꾸벅 인사라도 하는 것 같다.
“그래. 내 생각이 좀 짧았다.”
그러고 마당의 나무들을 둘러보니 그제야 깎였던 낯이 선다. 여기에 와 사는 나무들치고, 그게 유실수든 아니든, 꽃나무든 아니든 나무 노릇 안 하는 나무들이 없다. 꽃이나 열매가 없으면 그늘로, 또는 제 자리를 지켜 저들의 몫을 훌륭히 해낸다. 11월에서 흰 눈 내리는 겨울로 들어가는 12월이다. 하얗게 눈 내리는 안마당에 차별 때문에 아파하는 나무는 없어야겠다. 잠시 차별을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
그러나 정작 짚 한 단 구하지 못했다. 양재 꽃시장에도 짚은 없었고, 농가가 가까운 백암시장에도 없다. 어떻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차를 몰아가는 길옆 눈벌에 탈곡을 한 짚들이 죽 깔려있긴 하다. 하지만 논 주인을 알 수 없으니 섣불리 건들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우고, 논둑에서 바람을 맞는 마른 풀을 꺾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볏짚 두 단치 마른 풀을 꺾어와 나무마다 싸개를 해 나갔다. 대추나무부터 했다. 지난해에 심었는데 올가을에 벌써 대추 서너 대접을 내주었다. 크기도 크고 맛도 좋았다. 대추나무가 내게 대추 맛을 보여줬으니 보답할 차례는 나다. 대추나무 밑동에 거름을 넉넉히 주고, 구해온 마른 풀로 누가 보아도 예쁘게 나무싸개를 했다.
모과나무 역시 향기롭고 노란 일곱 개의 가을을 품어 내게 주었다. 그것은 예측 이상의 고마운 선물이다. 보살펴 주면 주는 만큼 또는 그보다 더 많게, 제 능력껏 돌려주는 나무의 성실함에서 내가 배울 일은 많다. 대체 나무는 어느 별에서 온 종족일까. 베풀기를 즐긴다. 상대가 누구든, 상대의 머릿속에 어떤 이상과 꿈이 있든 차별하지 않는다. 상대의 도덕성을 측정하거나 빈부를 상관하지 않는다.
나무는 자신을 선택한 이가 누구든 그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나무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연의 천성이 그러하듯 잎을 내고 꽃을 피운다. 또한 자연과의 약속대로 열매를 맺어 과실을 그의 주인에게 바친다. 나무는 비굴해 보이는 듯하지만 또한 정직하다.
자두나무며 배롱나무, 매실나무, 꽃복숭아며 포도덩굴까지 나무싸개를 해주고 손을 털었다. 쟁기도 쟁기간에 집어넣고, 장갑을 벗어 손을 씻고 보니, 저쪽 마당귀에 나무싸개 없이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친구가 뚱딴지 같이 심어놓고간 고욤나무다.
“큰일은 못해도 경계 노릇은 할 거다.”
친구 말대로 경계 노릇밖에 못하는 꽃이며 열매며 뭣하나 신통한 게 없는 나무다. 그렇기는 해도 그 나무만 뺀 일이 마음에 걸렸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괜히 고욤나무에 눈이 갔다. 아무리 나무라 해도 이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나를 얼마나 원망할 텐가. 다들 싸개를 안 했다면 추워도 같이 추우면 되지만 혼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조금만 추워도 나만 추울 거라는 마음에 서러움이 이만저만 아닐 테다.
성가셔도 다시 장갑을 찾아들고 찬바람을 쐬며 들녘에 나가 마른 풀을 베어왔다. 모자란 듯 싶어 메리골드 꽃대와 잘 섞어 정성껏 싸개를 해주었다. 그걸 해주고 일어서며 보니 나무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소외감의 위기에서 벗어난 어린아이처럼 내게 꾸벅 인사라도 하는 것 같다.
“그래. 내 생각이 좀 짧았다.”
그러고 마당의 나무들을 둘러보니 그제야 깎였던 낯이 선다. 여기에 와 사는 나무들치고, 그게 유실수든 아니든, 꽃나무든 아니든 나무 노릇 안 하는 나무들이 없다. 꽃이나 열매가 없으면 그늘로, 또는 제 자리를 지켜 저들의 몫을 훌륭히 해낸다. 11월에서 흰 눈 내리는 겨울로 들어가는 12월이다. 하얗게 눈 내리는 안마당에 차별 때문에 아파하는 나무는 없어야겠다. 잠시 차별을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