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by 권영상 작가 2018.07.26
“저 이웃집 아저씨 왜 또 왔지!”
엄마는 퇴근하여 들어오는 나를 쏘아보며 아내 뒤에 가 숨는다.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여는 사이 나는 어깨를 잡고 주저앉는다. 엄마가 손에 든 막대기를 떨어뜨리며 소리친다. “이 나쁜 도둑놈! 뭘 훔치려고 또 왔어!” 엄마는 씩씩거리고, 아내는 멍하니 서 있다.
내 친구, 그의 엄마 이야기다. 엄마는 치매 중이다. 엄마에게 구타 아닌 구타를 당하면서도 요양원에 보내지 못하는 건 아내 때문이다.
“어머님한테 당신이 어떤 아들이냐구. 그걸 생각해 봐요!”
나는 엄마에게 그야말로 ‘어떤 아들’이었다. 딸 여섯을 낳으신 뒤에야 얻은 외아들이다.
내가 태어난 날 마을엔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벌여준 잔치였다. 자식 일곱을 낳도록 마음 졸인 건 아버지와 엄마만이 아니었다. 이웃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날부터 엄마의 ‘어떤 아들’이 되어갔다. 누가 건들기만 해도 ‘아니 우리애가 어떤 아들인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며 엄마는 매사 나의 보호막이 되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음식을 상용하듯 먹으며 자랐고, 남들이 엄두도 못 내는 고가의 옷을 입으며 컸다. 고가의 테니스 개인지도를 받았고, 학교 대표로 출전에 출전을 거듭했다. 비싼 과외공부 덕에 다들 명문이라는 학교를 보란 듯이 나왔다.
나는 엄마의 꿈이며 희망이며 자존심이며, 존재 이유였다. 그런 나는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직장을 다녔고,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다. 이제 아무 부족할 게 없는 시점에서 엄마에게 닥쳐온 질병이 치매였다.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간병을 자청하였다. 그리고 병수발에 매달렸다. 아내는 인간적이었다. 아들을 위해 쏟은, 한 어머니의 헌신적 삶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나에게 모든 걸 걸었던 엄마가 지금 와서 나를 ‘이웃집 아저씨’로 여긴다거나 물건을 훔치러 오는 ‘도둑놈’으로 몬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건 도둑을 쫓는답시고 닥치는 대로 집어 든 집기로 나를 가격한다. ‘도둑놈’이 된 이상 이제 나는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없고, 아내와 한방에서 잠 잘 수 없게 됐다.
나는 도둑이다. 엄마의 모든 것이었던 나는 엄마의 젊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도둑이다. 자식을 일곱이나 낳은 것도 어쩌면 나 때문이고, ‘딸 많은 집’ 낙인이 찍힌 것도 나 때문이고, 누나들에 대한 심한 성차별도, 엄마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인격마저 버리고 살 게 한 것도 나 때문인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엄마의 엄마다운 인생을 훔친 도둑이 분명하다. 엄마는 지금 치매라는 이름으로 나를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무슨 잘못인가. 시대가 만들어놓은 남아선호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을 뿐 내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떻든 엄마에게 치매가 없었다면 엄마는 잃어버린 엄마의 인생을 어떻게 하소연하였을까. 나를 보고 도둑놈! 도둑놈! 할 때마다 어쩌면 엄마의 오랜 아픔이 조금씩 누그러졌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혹시 누군가의 인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훔치는 도둑이 아닐까. 슬픈 내 친구, 그의 이야기다.
엄마는 퇴근하여 들어오는 나를 쏘아보며 아내 뒤에 가 숨는다.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여는 사이 나는 어깨를 잡고 주저앉는다. 엄마가 손에 든 막대기를 떨어뜨리며 소리친다. “이 나쁜 도둑놈! 뭘 훔치려고 또 왔어!” 엄마는 씩씩거리고, 아내는 멍하니 서 있다.
내 친구, 그의 엄마 이야기다. 엄마는 치매 중이다. 엄마에게 구타 아닌 구타를 당하면서도 요양원에 보내지 못하는 건 아내 때문이다.
“어머님한테 당신이 어떤 아들이냐구. 그걸 생각해 봐요!”
나는 엄마에게 그야말로 ‘어떤 아들’이었다. 딸 여섯을 낳으신 뒤에야 얻은 외아들이다.
내가 태어난 날 마을엔 잔치가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벌여준 잔치였다. 자식 일곱을 낳도록 마음 졸인 건 아버지와 엄마만이 아니었다. 이웃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날부터 엄마의 ‘어떤 아들’이 되어갔다. 누가 건들기만 해도 ‘아니 우리애가 어떤 아들인데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며 엄마는 매사 나의 보호막이 되었다.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음식을 상용하듯 먹으며 자랐고, 남들이 엄두도 못 내는 고가의 옷을 입으며 컸다. 고가의 테니스 개인지도를 받았고, 학교 대표로 출전에 출전을 거듭했다. 비싼 과외공부 덕에 다들 명문이라는 학교를 보란 듯이 나왔다.
나는 엄마의 꿈이며 희망이며 자존심이며, 존재 이유였다. 그런 나는 엄마가 그토록 원하던 직장을 다녔고,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다. 이제 아무 부족할 게 없는 시점에서 엄마에게 닥쳐온 질병이 치매였다.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간병을 자청하였다. 그리고 병수발에 매달렸다. 아내는 인간적이었다. 아들을 위해 쏟은, 한 어머니의 헌신적 삶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나에게 모든 걸 걸었던 엄마가 지금 와서 나를 ‘이웃집 아저씨’로 여긴다거나 물건을 훔치러 오는 ‘도둑놈’으로 몬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건 도둑을 쫓는답시고 닥치는 대로 집어 든 집기로 나를 가격한다. ‘도둑놈’이 된 이상 이제 나는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없고, 아내와 한방에서 잠 잘 수 없게 됐다.
나는 도둑이다. 엄마의 모든 것이었던 나는 엄마의 젊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도둑이다. 자식을 일곱이나 낳은 것도 어쩌면 나 때문이고, ‘딸 많은 집’ 낙인이 찍힌 것도 나 때문이고, 누나들에 대한 심한 성차별도, 엄마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인격마저 버리고 살 게 한 것도 나 때문인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엄마의 엄마다운 인생을 훔친 도둑이 분명하다. 엄마는 지금 치매라는 이름으로 나를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또 무슨 잘못인가. 시대가 만들어놓은 남아선호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을 뿐 내가 원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떻든 엄마에게 치매가 없었다면 엄마는 잃어버린 엄마의 인생을 어떻게 하소연하였을까. 나를 보고 도둑놈! 도둑놈! 할 때마다 어쩌면 엄마의 오랜 아픔이 조금씩 누그러졌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혹시 누군가의 인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훔치는 도둑이 아닐까. 슬픈 내 친구, 그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