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간신히 드린 기도

간신히 드린 기도

by 한희철 목사 2018.07.11

이문재 시인이 쓴 ‘오래된 기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오래된 기도’를 읽다보면 우리 삶의 많은 순간이 기도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순간들을 기도라 하고 있으니까요.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깊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친구 목사가 오래 전 시골에서 목회할 때의 일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수요일 밤 예배에 한 집사님이 처음으로 대표기도를 맡았다고 했습니다. 교우들 앞에서 처음 드리는 기도이니 얼마나 떨렸을까요? 기도문을 쓰고 또 쓰고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예배당으로 갔고 기도 시간이 되어 기도를 드리는데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문을 읽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캄캄해진 것은 예배당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집사님의 마음엔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디까지 했는지,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진땀을 흘리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앞자리에 앉은 권사님 한분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고 마쳐!”
그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이 마침내 입을 열어 기도를 마쳤는데, 얼마나 당황을 했던지 집사님은 이렇게 기도를 마무리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간신히 기도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내게 큰 웃음과 은혜를 아울러 주었습니다. 웃음과 은혜를 함께 받았던 것은 ‘간신히’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중에는 간절히 드리는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간신히 드리는 기도도 있는 거구나, 간절히 드리는 기도를 받으시는 분께서는 얼마든지 간신히 드리는 기도도 받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간신히 드리는 기도도 기도라면 우리는 매 순간 기도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덤처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