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by 한희철 목사 2018.06.20
굳이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을 누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일을 뜻하는 거라고 덧붙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모든 만남 뒤엔 이별이 따라온다는 것 잘 아니까요.
하지만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헤어진 뒤엔 반드시 만난다니,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선뜻 받아들여지질 않습니다. 많은 경우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헤어진 뒤의 일은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며칠 참으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10여 년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삶이란 묵묵히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함께 했던 시간이 아주 길지도 않았고 특별한 일을 하지도 못한 채 떠나는 사람, 무심하게 손을 흔들어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 손을 잡고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 이럴 순 없다며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라고 하는 사람, 평소 부끄러움이 많아 걸음이 어려웠을 터인데도 용기를 내어 찾아와선 내가 기도해도 되겠냐며 눈물로 긴 기도를 하는 할머니 권사님, 함께 했던 사람들을 등지는 일이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니 어릴 적 보았던 환등기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난 태안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며 내걸었던 표어 “하나님의 눈물을 우리도 닦을게요!”, 지역 청소년들의 꿈을 격려하기 위해 열었던 길거리농구대회, 기꺼이 그 작은 행사에 참여해 준 최명룡 감독과 정인교 감독과 최교윤 심판,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강원도를 찾아가 모판을 만들고 볍씨를 뿌리고 모를 심고 마침내 잘 익은 벼를 낫으로 베던 <농사체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일궈낸 <열린작은도서관>, 배고픈 이웃들이 없도록 쌀독을 채워왔던 <사랑의 쌀독>, 우리는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닌 사랑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기도의 밧줄>…, 되돌아보니 웃음을 짓게 하는 순간들이 적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많은 돈이나 넓은 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속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겠구나,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는 사람이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정말 부자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을 준비할 때 왜 그랬을까요, 문득 버나드 쇼가 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썼다는 글이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입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헤어지는 순간을 맞았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새삼스레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허락된 만남을 사랑으로 은총으로 채워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헤어진 뒤엔 반드시 만난다니,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선뜻 받아들여지질 않습니다. 많은 경우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헤어진 뒤의 일은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며칠 참으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10여 년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삶이란 묵묵히 하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함께 했던 시간이 아주 길지도 않았고 특별한 일을 하지도 못한 채 떠나는 사람, 무심하게 손을 흔들어도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 손을 잡고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 이럴 순 없다며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라고 하는 사람, 평소 부끄러움이 많아 걸음이 어려웠을 터인데도 용기를 내어 찾아와선 내가 기도해도 되겠냐며 눈물로 긴 기도를 하는 할머니 권사님, 함께 했던 사람들을 등지는 일이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떠올리니 어릴 적 보았던 환등기 필름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난 태안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며 내걸었던 표어 “하나님의 눈물을 우리도 닦을게요!”, 지역 청소년들의 꿈을 격려하기 위해 열었던 길거리농구대회, 기꺼이 그 작은 행사에 참여해 준 최명룡 감독과 정인교 감독과 최교윤 심판,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강원도를 찾아가 모판을 만들고 볍씨를 뿌리고 모를 심고 마침내 잘 익은 벼를 낫으로 베던 <농사체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일궈낸 <열린작은도서관>, 배고픈 이웃들이 없도록 쌀독을 채워왔던 <사랑의 쌀독>, 우리는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닌 사랑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기도의 밧줄>…, 되돌아보니 웃음을 짓게 하는 순간들이 적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많은 돈이나 넓은 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속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겠구나,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는 사람이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정말 부자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을 준비할 때 왜 그랬을까요, 문득 버나드 쇼가 했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썼다는 글이었는데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입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헤어지는 순간을 맞았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새삼스레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허락된 만남을 사랑으로 은총으로 채워가는 것이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