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찾아서
그리움을 찾아서
by 이규섭 시인 2018.06.15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은 그리움을 찾아 길을 나섰다. 그리움의 잔영이 머무는 곳은 강원도 영월의 외딴 계곡. 울퉁불퉁 날것의 원시계곡은 아니다. 인파가 몰리는 이름난 계곡도 아니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고향 마을 앞을 휘돌아 흐르던 내와 닮았다. 30여 년 전 친인척 피서지로 선택한 이유다.
여장을 푼 곳은 단층짜리 소박한 민박집이다. 그 집 앞은 계곡의 화룡점정. 잔잔하게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덩치 큰 바위 사이로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려 소(沼)를 이뤘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시린 계곡물은 맑고 투명하다. 산들바람에 묻어오는 흙 내음은 구수하고 풀 냄새는 풋풋하다. 텃밭에서 딴 고추와 상추를 푸짐하게 주는 주인의 인심도 훈훈하다.
취사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천렵하듯 식자재와 취사도구를 가져갔다. 민박집 뒤 엔 샘이 있어 먹거리를 씻고 음식 준비하기 편하다.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서 먹던 어린 시절의 향수가 저녁연기처럼 알싸하게 파고든다. 어둠이 짙어지면 별들은 총총 빛나고 반딧불이는 형형하게 어둠 속을 나른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구성지다.
햇볕이 쨍쨍한 낮에는 된장을 풀어 넣은 어항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계곡의 언저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땀이 흘러 물속에 들어가면 금 새 입술이 파랗게 질린다. 헛헛한 허기는 강원도 감자와 옥수수를 삶아 먹으며 촌티나 게 여름휴가를 몇 해 보냈던 곳이다.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에서 즐기는 바캉스와 거리가 먼 베잠방이 걸치고 천렵하는 아날로그식 피서다.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매형과 조카가 유명을 달리해 짠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 계곡을 알게 된 것은 말 타고 전도하던 목사를 취재하면서다. 그곳은 영월군 관내 면 소재지 가운데에서도 인구가 가장 적다. 민가는 골짜기에 흩어져 있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사람을 만나려면 고개를 넘어야 했고 말을 이동 수단으로 활용했다. 움막 같은 교회의 신도는 할머니와 아이들 몇 명에 불과했다. 목사는 계곡 아랫마을에 돌담교회를 지어 옮겼고 전도사가 움막교회서 일요 예배를 보고 있었다. 움막 같던 교회는 컨테이너 두 동으로 번듯해졌다. 말 타고 전도하던 목사는 여든 중반으로 은퇴한 뒤 침술봉사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30여 년 만에 들린 계곡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비포장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펜션과 오토캠핑장,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민박집이 어디쯤인지 찾기 어려웠다. 커다란 바위와 소, 주변 소나무는 그대로 일 거라는 확신이 있어 물어물어 찾았다. 단층 민박집은 그대로인데 새 주인이 나그네를 맞는다. 방갈로 몇 채가 늘었다. 주변은 잔디를 깔고 깔끔하게 단장했다. 행정 주소도 ‘수주면’에서 ‘무릉도원면’으로 바뀌었다.
고즈넉한 산골마을 분위기는 사라졌다. 인터넷에 마을 이름을 치니 부동산 매물 정보가 줄줄이 뜬다. 그리운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나 그리움은 남는다. 그리던 산천은 인간의 욕망이 할퀸 상처로 신음하고 있어 씁쓸하다.
여장을 푼 곳은 단층짜리 소박한 민박집이다. 그 집 앞은 계곡의 화룡점정. 잔잔하게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덩치 큰 바위 사이로 작은 폭포처럼 흘러내려 소(沼)를 이뤘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시린 계곡물은 맑고 투명하다. 산들바람에 묻어오는 흙 내음은 구수하고 풀 냄새는 풋풋하다. 텃밭에서 딴 고추와 상추를 푸짐하게 주는 주인의 인심도 훈훈하다.
취사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천렵하듯 식자재와 취사도구를 가져갔다. 민박집 뒤 엔 샘이 있어 먹거리를 씻고 음식 준비하기 편하다.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면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서 먹던 어린 시절의 향수가 저녁연기처럼 알싸하게 파고든다. 어둠이 짙어지면 별들은 총총 빛나고 반딧불이는 형형하게 어둠 속을 나른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구성지다.
햇볕이 쨍쨍한 낮에는 된장을 풀어 넣은 어항으로 물고기를 잡거나 계곡의 언저리를 느릿느릿 걸었다. 땀이 흘러 물속에 들어가면 금 새 입술이 파랗게 질린다. 헛헛한 허기는 강원도 감자와 옥수수를 삶아 먹으며 촌티나 게 여름휴가를 몇 해 보냈던 곳이다.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에서 즐기는 바캉스와 거리가 먼 베잠방이 걸치고 천렵하는 아날로그식 피서다.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매형과 조카가 유명을 달리해 짠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 계곡을 알게 된 것은 말 타고 전도하던 목사를 취재하면서다. 그곳은 영월군 관내 면 소재지 가운데에서도 인구가 가장 적다. 민가는 골짜기에 흩어져 있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사람을 만나려면 고개를 넘어야 했고 말을 이동 수단으로 활용했다. 움막 같은 교회의 신도는 할머니와 아이들 몇 명에 불과했다. 목사는 계곡 아랫마을에 돌담교회를 지어 옮겼고 전도사가 움막교회서 일요 예배를 보고 있었다. 움막 같던 교회는 컨테이너 두 동으로 번듯해졌다. 말 타고 전도하던 목사는 여든 중반으로 은퇴한 뒤 침술봉사를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30여 년 만에 들린 계곡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비포장 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펜션과 오토캠핑장,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민박집이 어디쯤인지 찾기 어려웠다. 커다란 바위와 소, 주변 소나무는 그대로 일 거라는 확신이 있어 물어물어 찾았다. 단층 민박집은 그대로인데 새 주인이 나그네를 맞는다. 방갈로 몇 채가 늘었다. 주변은 잔디를 깔고 깔끔하게 단장했다. 행정 주소도 ‘수주면’에서 ‘무릉도원면’으로 바뀌었다.
고즈넉한 산골마을 분위기는 사라졌다. 인터넷에 마을 이름을 치니 부동산 매물 정보가 줄줄이 뜬다. 그리운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나 그리움은 남는다. 그리던 산천은 인간의 욕망이 할퀸 상처로 신음하고 있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