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던바의 수

던바의 수

by 한희철 목사 2018.06.14

세상에는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제법 인생을 살았다 싶은 사람에게도 세상 구석구석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치들이 있고,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도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외국어처럼 낯설 때가 있습니다.
‘던바의 수’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무엇보다도 처음 듣는 말이어서 갸우뚱했습니다. 설명을 대하니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는 150명이다. 이를 ‘던바의 수’라고 한다.”
‘진화심리학이 밝히는 관계의 메커니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던바의 수>라는 책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가 쓴 책입니다.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를 어찌 150명이라 생각했을까, 어림짐작에도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궁금한 생각이 꼬리를 이었습니다.
던바 교수는 영장류 집단의 규모와 대뇌 신피질의 상대적 크기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신피질은 주로 의식적 사고를 담당하는데, 인간의 신피질 크기로 미뤄 보면 150명이라는 숫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터무니없는 주장처럼 여겨져 허점이 많은 것 같지만 던바의 수는 여러 분야에서 경험적으로 등장을 합니다. 사람의 얼굴을 대면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회사 조직은 150명 이하가 적당하고, 이보다 크면 효율을 위해서 여러 개로 나누는 게 좋다는 경영 이론이 그 중 하나입니다. 로마군이나 최신 군대의 조직, 학자 공동체, 신석기시대의 마을 규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친구 수 등에서도 던바의 수는 유효하게 등장을 합니다. 책의 해제를 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심지어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하는 이들이 맺는 ‘혈맹’의 구성원 수도 얼추 150명 정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지난해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던바의 수’가 실감이 났습니다. 지난해 꼭 이맘 때 열하루 동안 DMZ를 걸은 일이 있습니다. 폭우와 무더위 속 380km 되는 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가졌던 시간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허리가 잘린 남과 북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 기도한 것이 있는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가장 어릴 적부터 시작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몇 사람이나 떠오를지 어떤 것도 짐작할 수가 없었지만, 열하루 일정 안에 그 기도를 마쳤습니다. 우리가 무한정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던바의 수는 함께 사는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