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혼주버스

혼주버스

by 권영상 작가 2018.06.13

지난 토요일 경남 고성에서 문학행사가 있었습니다. 고성에 도착하자마자, 일요일 서울행 버스를 예매했지요. 그때 함께 간 일행이 있었어요. 여섯.
행사를 마친 이튿날 아침, 소나무 숲길을 걷고 있을 때입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여기 고성에 사시는 잘 아는 분의 대절버스를 타고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분의 따님 혼사가 서울에서 있는데 여섯 명 정도의 자리는 얼마든지 있다는 거였지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혼주버스로 같이 가실 거예요? 혼자 가실 거예요?”
그 말에 폐가 안 될까 싶어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동승하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렇게 해서 고속버스표를 물리고 오전 9시, 혼주가 낸 대절버스에 올랐습니다. 혼주 내외분께서 기꺼이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눈치껏 뒷좌석에 앉았지만 자리는 넉넉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후, 그 혼주께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 서울나들이 한다 하시고, 편안하게 가 주이소마.”
그냥 앉을 듯하던 그분이 ‘집사람한테도,’ 하시면서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안주인께서 일어나 마이크를 받았습니다. 청바지에 경쾌한 무늬의 푸른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근데 동창이 자꾸 떠들어대서 미안합니다.” 그러고는 웃으며 앉으셨습니다.
‘잔칫집은 시끄러버야 한다.’ ‘조용하믄 재미없제.’ ‘암만!’ 그런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여 혼주께서 ‘떠든다고 한 동창’은 벌써 술을 한잔씩 돌리고 있는, 챙이 짧은 모자의 남자분입니다. 제게도 술을 한잔 권하시기에 초등학교 동창이시냐고 여쭈어보았지요. 벌써 얼굴이 불콰해진 그분이 입을 여셨지요. 아래윗집에서 어렸을 적부터 같이 놀고, 같이 학교 다니고, 같이 싸우고, 같이 놀려 먹이며 같이 나이 먹어온 사이라 했습니다. 학교 갈 때 책가방 메어주고, 보리문둥이 숨었다고 놀리고, 빈 도시락에 개구리 잡아넣고, 아침에 엄마한테 야단맞고 울고 나오면 같이 터덜터덜 걸어주던 동무고 동창이라고.
챙이 짧고 둥근 모자를 쓴 동창은 보기에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개구진 분이었습니다. 술 한 잔을 받아 마신 내게 일회용 접시 위의 수육을 권하고는 또 다음 분에게로 옮겨갑니다.
버스가 덕유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떠날 때입니다. 이번엔 양복을 반듯하게 입은 혼주의 아드님이 큼직한 봉지를 하나씩 돌렸습니다. 봉지를 열며 나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거기엔 베지밀 하나, 양파즙 하나, 귤 둘에 바나나 하나, 박카스 한 병에 활명수 한 병, 사탕 넷, 껌 한 통, 안주용 육포 조금, 초콜릿, 물 한 병……. 나는 어린애나 된 것처럼 이 재미난 선물을 앞에 놓고 기뻐했습니다.
조금 뒤에 여자 혼주분이 따님이 만들었다는 달콤한 마카롱을 한 통 들고 다니며 일일이 나누어주십니다. 마음이 확 열린 분입니다. 꽃버선을 신고 흰 고무신을 신으셨는데 청바지와 그럴듯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차창 밖의 유월이 보내는 초록의 찬사와도 같이 나는 혼주의 혼사를 위해 몇 번이고 축복의 인사를 드렸지요. 일행 중의 어느 시인은 신랑신부의 이름으로 삼행시 두 편을 지어드렸고, 그것마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 우리는 혼주의 좋은 날의 혼사를 위해 축복의 성금을 만들었지요.
버스는 시원히 달려 예식장 앞에 무사히 도착했고, 너무나 뜻밖의 행복한 작별을 했습니다. 나이가 찬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언젠가 혼주버스를 대절 내야 할 그때를 생각합니다. 내게도 혼주의 ‘개구진 동창’ 같은 고향 동창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