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사랑하는 친구를 보내며

사랑하는 친구를 보내며

by 한희철 목사 2018.06.05

전화기에 찍힌 미국에 사는 친구의 이름,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지만 목소리가 낯설었습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스쳤고 그 예감은 틀리지가 않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농을 가볍게 하고 있다 여겨질 뿐 어떤 것도 실감이 되질 않았습니다.
한 밤이 어찌 갔고 급하게 끊은 표를 들고 다음날 비행기를 탔습니다. 몇 가지 일정이 있었지만 마지막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싶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생각하니 입장이 바뀌었어도 얼마든지 친구 또한 황망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겠구나 싶어 당연한 걸음으로 여겨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얼마든지 신이 나서 마중을 나왔을 시애틀, 하지만 친구는 없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포틀랜드로 가면서 조금씩 친구의 부재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석 달 전에도 열흘간 함께 시간을 보냈던, 보름 전에는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 했던, 뭐가 미안하냐고 묻자 마음이 힘든 내게 아무 힘도 되지 못해 미안하다 했던, 사방 어디에나 친구는 있었고 사방 어디에도 친구는 없었습니다.
따뜻했고, 수수했고, 정 많았고, 자유로웠고, 올곧았고, 너그러웠고, 부끄러워할 줄 알았고, 번번이 좌절되면서도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었고, 지극히 인간적이었고, 사랑할 줄 알았고, 불쌍히 여길 줄 알았던, 그래서 미더웠고 마음 깊이 신뢰했던 친구, 한 번도 그 말 전한 적 없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친구는 분명 사랑하는 친구였습니다.
미국에 정착하는 한인들을 돕기 위해 사회관을 운영하며 비자며 연금이며 주택 임대며 병원치료며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도왔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잘 모이지 않는 펀드를 조성하려 동분서주 마음이 분주했던, 일주일에 두 번은 노인급식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친구로 살아왔던, 그랬기에 친구의 떠남은 그를 알던 모든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고통과 허전함이었습니다.
사모님을 통해 친구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다가 목이 멨습니다. 산소 호흡기를 꼽은 채 힘들어하던 친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자꾸만 호흡기를 빼려고 했는데, 호흡기를 빼면 더 위험해질까 바라만 보았다고 했습니다. 설마 그럴 줄 몰랐던 그 날이 마지막 날인 줄 알았더라면, 이야기 나눌 시간 더는 없는 줄 알았더라면 얼마든지 도울 걸, 사모님은 눈물로 후회를 했습니다.
생각해 보았지요.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을 그 말이 무엇이었을까를 말이지요. 친구의 마음 아주 모르지 않으니 짐작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분명 친구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친구의 마음 헤아리며 친구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친구야, 네가 사랑했던 세상 나도 사랑할게. 네가 품었던 사람들 나도 품을게. 그동안 고마웠다.’
생각지 못했던 시간 사랑하는 친구를 보내며 마음에 새기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사랑한다는 말을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