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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대 무엇을 하려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대 무엇을 하려는가?

by 정운 스님 2018.06.05

“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다. 변화는 치즈를 계속 옮겨 놓는다. 변화를 예상하라. 치즈가 오래된 것인지 자주 냄새를 맡아 보라.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라. 사라져 버린 치즈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릴수록, 새 치즈를 보다 빨리 발견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은 미국 작가인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옮겨왔다. 10년 전에 읽은 책인데, 나름대로 필자에게 메시지를 주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에 따르지 못하고 산다. 어쩌면 변화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현시대는 변화가 매우 빠르다. 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나타난 현상과 발전된 양상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세계 최대 갑부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한 기자로부터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매우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어떻게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었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빌 게이츠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저는 똑똑하지 않습니다. 또한 특별한 재능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변화해야 한다는 마음을 생각으로 옮겼고,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노력했을 뿐입니다.”
빌 게이츠의 성공 키워드는 빠르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변화를 불교적인 용어로 대체한다면 ‘무상無常’이다. 이렇게 불교에서 무상을 언급하니까 불교를 염세적인 이미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물질[육신]+정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늙음으로 향한다. 또한 물건도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소멸로 향해 간다. 물리학자에 의하면, 책상이라는 물건도 그 속에서는 끊임없이 분자가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무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지나간 것을 붙잡으려고도 하지 말며,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이 글을 준비했던 의도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변화되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멈춰 있기를 원하는 것에 대한 개탄이다. 게다가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집이 견고해진다. 실은 필자도 폰을 바꾸거나 물건을 새로 구입했을 때, 스스로 사용법을 익히려고 하지 않고 타인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나도 늙어서 어쩔 수 없는 거지.’ 하며 그럴싸한 핑계를 댄다. 옛 고사에 ‘각주구검刻舟求劍’이 있다. 항해 도중에 배 밖으로 칼을 떨어뜨린 사람이 나중에 그 칼을 찾기 위해 배가 움직이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칼을 떨어뜨린 뱃전에다 표시를 해둔다는 것이다. 곧 끊임없이 배가 흘러가고 있는데, 그 뱃전에 칼이 있겠는가. 곧 낡은 것만 고집하고, 멈춰 있으려는 어리석은 자이다.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어학을 배우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적다고 한다. 또한 운동을 통해서 근육을 만들어 내듯이, 뇌도 자주 사용해야 뇌에 근육이 생기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한다. 나이 들었다고 주저앉거나 고집피우지 말고, 변화되는 세상에 귀 기울이자. 멈춰 있지 말자.